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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성 Oct 09. 2022

코로나가 상기시킨 기억

아침을 차려 먹고 설거지까지 하고 나니 등판이 결리고 가슴이 쑤셔온다. 미세한 근육통 탓인지 연골 뼈가 부러진 왼쪽 무릎에 통증이 재발한다. 얼른 좀 누워야겠다.

지난주 목요일 코로나에 걸린 탓에 며칠 몸이 힘들다. 지금까지 코로나 청정구역이었던 우리 집은 딸아이의 확진에 이어 나까지 코로나 끝물에 고생이다. 다행히 딸아이는 큰 고생 없이 잘 지나갔지만, 나는 온몸에 힘이 없어 기력이 없다. 슈퍼 유전자라고 자부했건만 아녔군.


그동안 나는 코로나에 걸리면 안 된다고 외쳐왔다. 우리 아가들, 주말에만 만나는 우리 아가들 밥을 맛있게 해줘야 하고 꼭 껴안아줘야 하고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어야 한다. 그런데 결국 오고야 말았다.

금요일 저녁 아이들이 모이는 날, 나는 주방에 설 수 없었다. 내가 없는 빈자리를 좀 채워주면 좋으련만, 남편은 식구들의 끼니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결국 나는 몸을 일으켜 마스크를 쓰고 주방에 선다. 밀린 설거지를 하고 밥을 하려니 시간이 늦어 배달음식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다음날 아침 9시 반 느지막이 눈을 뜬다. 온몸이 천근만근, 손가락만 스쳐도 머리가 아프다.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왔더니 남편은 핸드폰을 보고 있다. 나는 배고플 아이들이 걱정된다. 짜증이 났다. 아침 좀 준비하면 안 되냐고 남편에게 한 소리를 하고 말았다. 남편은 이제 준비하면 되지 않냐며 왜 짜증을 내냐고 짜증을 낸다. 오고 가는 짜증 속에 아침은 준비되고 끼니를 해결했다. 남편은 설거지를 했고 나는 빨래를 돌렸다. 몸이 너무 힘들어 몸을 뉘었다 일어나니 벌써 또 점심시간이다. 거실로 나왔더니 남편은 TV를 보며 빨래를 개고 있다. 점심 좀 생각해보지라고 하니, 배가 안 고프단다. 아들을 데리고 나가 뭘 한 그릇 사 먹을 생각이라고 한다. 그럼 나랑 딸아이는 어떡하냐고 하니, 라면을 끓여먹던지 어른이니 알아서 하라고 한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도망치는 남편을.

16개월 터울의 두 아이를 독박 육아로 키우며 너무 힘들었었다. 힘든 상황을 도와주러 오셨던 시어머니는 온갖 상처를 남겨놓고 가셨다.

큰아이 6개월 때 둘째 임신을 하고 입덧이 심해 시어머니가 도와주러 오셨는데, 몸이 무거워 샤워시간이 40분씩 걸렸다. 시어머니는 빨리 씻고 나오지 않는다고 타박을 하시고 샤워하고 닦은 수건으로 발을 닦았더니 더럽다고 내가 쓴 수건은 안 쓰시겠단다. 장을 보러 나가면 간만의 햇살을 누리기도 전 전화벨이 울린다. 애 맡겨두고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고. 무거운 몸으로 서둘러 집을 향해가는 발걸음이 서럽기만 했다. 둘째 출산 막달에 어머니께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고와도 되겠냐고. 첫째를 임신하고 극장은 가지 못했고, 둘째를 출산하고 나면 더더욱 어려울 일이기에 그 좋아하던 영화를 한 번 보고 싶었다. 몇 년 만에 극장을 가고 싶다는 기대를 품고 어머니께 여쭸건만, 돌아온 대답은 '애엄마가 그런 사치를 꼭 부려야 하냐. 애엄마니까 그런 사치는 접어둬라.'는 것이었다. 결국 극장이라는 사치를 마음속 깊이 접어두었다.

이 모든 상황에 남편은 주변인이었다. 그냥 주변인이었던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상황에서 도망치고 없었다. 둘째를 출산한 후 남편은 같은 부서 여직원을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것만 주고 싶어 내 사생활은 없었다. 살림하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책 읽어주고,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집을 다시 정리하고 새벽에 잠들기가 일상이었다. 아침에 아이들이 눈을 뜨면 정돈되고 깨끗한 집을 보게  하고 싶어서였다. 이런 일상의 반복 속에서 나는 친구와의 통화도 뒷전이고 오로지 생활에만 열중했었다. 그러다 힘에 부쳐 남편에게 일주일에 한 번만 일찍 와서 도와달라고 몇 번이고 부탁했었다. 끝내 일찍 오지 못하던 남편은 일 아니면 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바지에서 발견된 영수증 한 장. 밤 9시 과천 카페. 남편의 직장은 을지로다. 당시 우리 집은 서울 성북구였다. 왜 그 시간에 과천에 있었을까. 남편 부서에 한 여직원이 떠올랐다. 신혼초 함께 한 술자리에서 '남자들이 제가 늪이래요.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라고 말했던 여직원의 집이 과천이었다. 느낌이 이상해서, 어제 어딨었냐고 남편에게 물으니 회사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한다. 거짓말이었다. 그렇게 남편의 외도가 밝혀지고, 나는 그 여자를 찾아가 말했다. '다른 사람 가슴에 못 박을 짓 하면 자기 가슴에 못 박을 날 온다고. 그러시면 안 된다고.'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나만 아무렇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영향은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울다가도 아이들 앞에서는 활짝 웃었다. 그맘때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등원을 했기에 힘든 맘을 달래기 위해 심리상담도 받았다. 그렇게 견디며 지냈건만, 일 년 후 남편의 핸드폰에 찍힌 카톡을 보고 경악했다. 남편의 카톡에 아이들 사진 프로필을 단 다음날이었다. '우리만의 공간에 어떻게 이럴 수 있냐'로  시작하는 장문의 카톡. 그 여자였다. 힘겹게 사는 나를 보면서도 둘은 관계를 이어오고 남편은 여전히 늦은 귀가를 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는 이상하게 잠이 쏟아졌다. 이상하리만큼 잠이 쏟아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내 뇌 속에서는 한번 큰 변화가 생겨버렸다. 온 회로가 뒤엉켜 잠만 쏟아져내렸다.


코로나에 걸려 힘이 든 내가 들은 말 한마디. '어른이니 당신 일은 당신이 해라.'

이 한 마디에 잊고 있던 10년 전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좋을 때 함께 웃는 건 어렵지 않다. 위로가 힘든 건 상대의 마음과 상황을 헤아리고 미지의 그 세계에 발을 내디뎌야 하기 때문이다. 내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디뎌줄 사람이 곁에 없어 외로움이 몰려온다. 나는 또 마스크를 쓰고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에 서러 간다.

멍석 깔린 곳에서 꽃을 선물하고 달콤한 말을 하는 사람은 멍이 접히자 할 바를 몰라 도망치고 난 그 자리에 우두커니 혼자 남아있다. 그래도 나는 힘을 낸다. 지켜야 할 아이들이 있기에.


한 줄 요약:

오고 가는 풍파 속에도 나는 걷는다. 나는 엄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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