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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성 Oct 12. 2022

구조화

생과 세계는 구조화이다

오늘은 뭔가를 쓰고 싶다. 쓰고 싶다고 하는 게 맞을까 말하고 싶다고 하는 게 맞을까.

말하고 싶다.


지난밤은 혼자라는 것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새벽 1시, 아직도 아무도 없는 집 안. 사람이 비운 공간에서 공간을 채운 다른 것들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구성과 구조 안에서 살아간다. 대개는 그 구성과 구조가 인식의 세계에 머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배경으로 머물러 인식의 세계라기보다는 관심의 세계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공기를 늘 신경 쓰고 있지는 않듯. 그러나 어제 밤은 이 구성과 구조 안에 있는 사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발현하는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사람이 비운 공간에서 사물이 전하는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채 그렇게 사물들의 보호 아래 잠이 들었다.


어딜 가든 나 아닌 누군가가 이루어낸 구성과 구조 속에서 움직이게 된다. 때로는 낯설게, 때로는 경이롭게, 때로는 익숙하게. 누군가가 만든 공간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고3 때 진로에 대해 고민하다 내가 흥미로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은 한문과 지리였다.

한문 수업은 한자수업과는 다르다. 한자로 쓰인 문장들을 해석하는 과목이 한문이다. 글자대로 읽기만 하면 해석이 되는 문장들과는 다르게, 한문은 각 한자의 뜻으로 퍼즐을 맞추듯 앞뒤 한자들을 조합해가다보면 어느새 하나의 퍼즐판이 완성되어 있다. 비문이나 암호처럼 각 글자들의 뜻을 찾아내 조합하여 문장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놀라울 정도로 흥미로웠다. 때로는 디아 돌핀을 느낄 만큼 찬란한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작은 하나들이 연결되어 큰 하나를 이루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같은 맥락으로 다가왔던 과목이 지리였다. 지도를 보면 가끔 가슴이 벅차곤 했다. 점과 점이 모여 선을 이루고 면, 입체가 되듯, 지도 속에는 사람의 역사가 그렇게 모여있다. 없던 곳에 집이 생기고 길이 생기고, 길은 또 다른 길을 만들고, 길과 길이 어져 마을이 확장되고. 그 반복으로 더 큰 세계가 이루어진다. 그 당시 길을 걸으며 생각하곤 했다. 내가 밟고 있는 땅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역사가 참 신기하다고.


무언가가 모이면 공간이 된다. 하나일 때는 점인 것이 둘셋이 모여 그 사이에 영역이라는 공간을 이루게 된다. 사람들은 이 공간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글자들이 모여 이룬 공간, 집과 길이 모여 이룬 공간, 사람과 사람이 모여 이룬 공간, 생각과 생각이 모여 이룬 공간, 시간과 시간이 모여 이룬 공간. 그래서 사람들은 무언가를 모아 구성을 잡고 구조화해 나가는 작업들을 하나보다. 그것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


흩어져 있는 점들을 모아 구성을 하고 구조화한다. 나는 역사의 시작은 구성과 구조화가 아닐까 싶다. 물리적인 영역뿐 아니라 추상적인 영역 또한 이러한 구조화의 결과물이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의 인간이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무언가를 본다. 갑자기 그 빛이 털을 가진 묵직한 형상으로 자신의 몸에 달려든다. 묵직한 무게감이 몸을 억누르고 날카로운 손발톱과 이빨로 살을 할퀸다. 인간은 아프다는 느낌을 그꼈고 본능적으로 그것을 밀쳐내고 아픔으로부터 도망쳤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된 인간은 어둠, 보이지 않는 세계, 낯선 형체, 날카로운 형상 등을 구성해 고통, 두려움이라는 것의 느낌을 구조화한다. 그래서 이 인간이 느끼게 된 두려움은 생존을 위협하는 무언가라는 기억을 구조화한 것이다.


매일 구조화된 공간과 감각과 생각 속에서 살아간다. 인간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한다. 선택이라 함은 하나의 구조와 하나의 구조를 통해 또 다른 구조를 이루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공간과 생각의 만족도는 잘 구조화된 것에 비례한다.  

나는 생각이 분분히 흩어지는 날이면 글을 쓴다. 글이 아니더라도 마인드맵을 통해서라도 구조화가 되면 한결 정리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제일 좋은 방법이 글쓰기였다. 생각 속에 있는 것들을 가감 없이 흘러가게 두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구조가 이루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삶을 이루는 기초인 구조화의 기능을 향상해갈 수가 있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고, 혼자 있는 공간의 구성과 구조가 내게 말을 걸어왔고, 나는 글을 썼다. 그래서 삶은 구조화라는 하나의 생각을 또 구조화했다.



한줄 요약 : 생과 세계는 구조화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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