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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성 Oct 25. 2022

인생은 아름다워

보통의 것이 갖는 위대함

현관을 열고 세상으로 발을 내디딘다.

싸늘해진 탓에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가을용 두툼한 점퍼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긴소매를 손끝까지 내려 추위로부터 몸을 꽁꽁 싸맨다.

눈부신 잠깐의 계절이 한창이다. 나무는 노랗고 붉은 색으로 휘황찬란하고, 낙엽 떨궈 땅과도 빛깔을 나눈다. 위아래로 온통 화려하게 채색된 세상이다. 아름다우면서도 너무 찬란해 어질 하기도 한, 차분하기보다는 살짝 들뜨게 는 도파민의 계절이다.

차가운 기운이 몸 곳곳을 파고든다. 그러나 알고 있다. 좀 걷다 보면 몸이 자가 발열하여 추위를 몰아낼 것이라는 걸. 이렇게 또 경험은 예측을 가능케 하여 안심을 시키는 기능을 한다.


너 다섯 명의 아저씨들이 모여 나무 가지치기를 다. 기린처럼 목을 길게 뻗는 기계를 타고 올라가, 사람 키 세 배는 될 나무의  가지를 치고 있는 사람, 밑에서 그 기계를 운전하는 사람, 떨어진 가지를 치우는 사람, 곁에서 잠시 허리 펴고 땀을 닦고 있는 사람.


나처럼 아침 걷기 운동 중인 중년의 여성.

 

유치원생 자녀를 등원시키고 오는 엄마들. 등원 버스에 아이를 태워 보내고 가벼워진 엄마들 손엔 빈 씽씽이 하나같이 댕댕 거리며 딸려있다. 아침부터 아이들의 놀이 욕구를 충족시키느라 애썼을 엄마들의 모습에서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어 하는  혹은 맞춰주느라 애쓰고 있는 부모라는 마음 느껴진다.


절룩거리는 다리를 이끌며 열심히 걷고 계시는 치노 팬츠에 스웨터 차림의 노신사. 걸음부터 보게 되어 서서히 시선을 위쪽으로 옮겨보는데, 예상과 달리 표정이 힘 있고 희망차다. 그의 표정을 통해 예측해본다. 저분의 걸음은 한 달 전보다 나아진 것이리라.

처음 몸이 굳어지는 병이 발병했을 때 흘렸을 본인과 가족의 눈물과 놀람. 이어진 수술과 치료, 반복되는 좌절과 새 의지, 그 곁에 메아리치는 여러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과 기도. 그 모든 시간을 보내며 호전되어진 몸. 그의 지금을 통해 여러 상황과 감정, 함께 했을 사람과 시간을 보게 된다.


어딘가에 숨어 열심히 지저귀고 있는 새소리. 이 소리가 33층 집 베란다까지 전해졌던 그 소리인 듯 같다. 귀엽고 맑은 소리가 높은 나무 어딘가에서 내 귓전에 이를 때,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 소리와는 상관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의 산비둘기 한 마리. 내 키만 한 나뭇가지 위를 분주히 오가며 빨간 열매를 열심히 따먹고 있다. 정말 즐겁게 날갯짓하는구나. 이 열매 저 열매 목표물을 발견하려는 몸부림이 마치 꿈꾸는 자의 미니어처 같다.


보도블록 사이 틈 좁은 흙 새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이름 모를 풀들.


그늘을 벗어나 양지로 접어들 때 온기 살갗을 매만지며 인사를 전하는 햇살.


벌써 모닝카페를 들렀다 오는 것 같은, 부스스한 긴 머리, 점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무릎 나온 츄리닝차림으로 에코백을 멘 20대 청년.


어딘가를 향하는 지친 표정의 검정 파카 입은, 검은 뿔테 안경을 쓴 30대로 보이는 남성.


손주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가는 할머니.


운동기구 위에서 열심히 허리를 돌리고 계시는 분홍 점퍼, 분홍 모자의 할머니.


보톡스를 맞아 피부가 짱짱하고 광이 나시는 할머니와  그 곁에 짙은 쌍꺼풀 수술을 하신 할머니, 두 친구 분의 외출.


요즘은 사람들을 보면, 그림처럼 멈춰있는 지금의 표정과 모습 뒤에 펼쳐있을 시간이 그려진다. 그들도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해본 적 있을 것이며 시련도 겪고 성취도 이뤘을 것이며, 자녀들을 웃게 하려고 개그맨이 돼 보기도 했을 것이고, 술에 취해 휘청거리기도 했을 것이고, 지쳐 이불속에 파묻혀 울기도 했을 것이고,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며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며 왁자지껄 했을 것이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보기도 하고 반성도 하고, 투정과 엄살을 부리다가도 다시 어른이 되려 하기도 했을 것이다. 점잖은 모습, 단정한 모습, 정제된 모습 뒤에 아이같이 울고 웃던 시간 있을 것이다. 요즘은 이렇게 사람들을 보면 나와 같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경험은 또 이렇게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특별하지 않은, 너무도 일상적인 사람들의 모습과 자연 속에서 느껴지는 한 가지는 생의 에너지이다. 지친 얼굴 속에서도 성난 얼굴 속에서도 한결같이 생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살아내느라 애쓰고 있는, 삶이라는 위대한 여정을 걷고 있는 위대한 그네들이 보인다. 그래서 모두가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인 것 같다.


얼마 전 개봉한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를 보았다. 뮤지컬 영화라 하기에는 음악과 가창력이 약하고, 술집 한 켠에서 동전을 넣고 추억의 노래를 회상케 하는 주크박스 영화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한 영화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뭐가 이렇게 엉성해'라는 생각을 했다. 결혼기념일을 맞아 인생은 아름답다니 아름다운 뭔가를 얻어오리라는 기대를 안고 극장에 들어섰던 터였다. 그러나 영화는 스토리도 약하고 연기력도 약하고, 파라는 특징이라도 제대로 살리든지라는 생각이 들게 크게 감동도 없고 눈물도 없었다. 감동적인 상황마저 어그러뜨리는 뭔가 허탈함마저 주는 영화였다. 영화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앵글이라는 것을 왜 저렇게 잡았나 싶게 엉성함과 서툰 느낌, 짜깁기 한 느낌 마저 들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2프로가 아닌 88프로가 부족해 보이는 영화 속 엉성함과 서툼, 미완성의 느낌, 감동마저 어그러지는 장면들이 계속 뇌리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어쩌면 삶과 더 닮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강렬하고 찬란하고 아름답고 꿈길을 걷는 듯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딘가 영화답지 않은 이 영화가 보통 사람들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감독은 그 부분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예종을 졸업한 감독이 그렇게 엉성하게 앵글을 잡았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답지 않은 영화로 보통 삶의 이야기를 하고, 그 보통의 밋밋한 인생 그것이 그것 자체로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그렇게 바라보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처럼 이 감독은 날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만난 아침의 풍경, 내가 보내는 대부분의 하루하루가 이 영화처럼 일상적이고, 어딘가 부족해 보이고, 어딘가 채워야 할 것이 있을 것 같고, 밋밋하기도 한 그렇고 그런 그림이다.

그런데 나는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나직이 읊조려본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마음과 같이.

찬란하여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소소하고 굴곡진 그 모든 것이 아름답기에 생이 찬란한 것이라고.

살아가는 모든 생들에게 전하고 싶다.

인생은 아름다워. 그래서 그대는 아름다워!!


한 줄 요약:

소소하고 보통인 일상적인 우리의 삶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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