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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성 Oct 31. 2022

도움? 오지랖? 투사?

그 사이 어딘가

외출을 했다 귀가하는 길이었다.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시동을 끄는데, 누군가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요즘은 여러모로 조용한 세상이다. 자동차 경적을 울리는 것도 조심하고, 길에서 큰 소리 내는 사람 보기 힘들고, 집 안에서도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발자국 소리도 조용히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조용한 세상에  고함이라니 어딘지 낯선 세상을 느낀다.


차 문을 열고 하차해 부러 주변을 살피니, 한 남자와 여자가 보인다. 덩치가 큰 젊은 남자는 분을 삭이지 못해 고함을 질러대고, 아가씨로 보이는 아담한 여자가 그에 대항하고 있다. 부부인지 남인지 알 수는 없지만 위태로워 보인다.

주변을 살펴도 조용한 지하주차장엔 나와 그들뿐이다. 주제넘은 간섭을 할 수는 없으니 그냥 지나칠까 하다, 둘의 관계가 어찌 됐든 위태로워 보이는 상황을 모르는 척해서도 안될 것 같아, 결국 나는 말없이 그들 사이에 머무르기로 한다.


조용히 둘 사이에 섰다. 좀 이상해 보일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게 대수랴. 호랑이같이 덤비고 있는 남자 앞에 선 여자가 공포를 느것 같은데, 그냥 지나친 들 내내 걱정이 될 것 같으니 돕는 편이 낫다. 내가 필요 없는 상황이라면 여자가 그냥 가라고 하겠지 싶어 일단은 머무르기로 한다. 유단자도 아니고 호신술 배운 것도 아니라, 폭력이 발생한다 해도 도울 방법 딱히 없긴 하지만, 어찌 됐든 하나보다는 둘이 낫겠지 증인이 있으면 함부로 폭력을 쓰지는 않겠지 하는 얄팍한 대응책뿐이었다.


대화 내용을 듣자 하니,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이고 운전 실수로 언쟁이 붙은 것이다. 아파트 정문 앞에서 신호를 받고 여자는 정문으로 진입했는데, 마침 그 때문에 남자가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고 한다. 여자는 그 상황을 모르고 가던 길을 마저 갔고, 사과도 안 하고 지나가는 게 괘씸했던 남자는 여자를 쫓아 지하주차장까지 따라온 것이다. 가던 길을 돌리면서까지 굳이 따라온 남자는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집념이 무서우리만치 엄청났다.

속으로 이 남자분도 일반적이지는 않구나 생각하며 조용히 섰는데, 역시나 남자는 나에게도 소리를 버럭 지른다. 깜짝 놀라 바라보니, 아줌마는 누구냐(아. 줌. 마. 치~ 그냥 댁은 누구냐고 해주지.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아줌마라는 사실은 맞으니 그분의 시력이 정확한 건 맞는데, 어쩐지 이 단어는 언제 들어도 좀 격하되는 여운을 남긴다), 가던 길 가시라 한다. 나는 그의 성질을 돋우지 않게 차분히 대답한다.

"아~ 상황이 좀 위험해 보여서요."

가던 길 가라고 남자 한번 더 소리를 지르,

앞에 선 여자 왜 그러냐고, 같이 계셔주셔서 너무 고마운데라고 남자에게 소리친다.

그 틈을 타 여자에게 첫마디를 건넸다. 연락을 취할 가족분에게 연락은 하셨냐고. 남편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그럼 나는 조금만 더 있으면 되겠군.'

"그냥 사과를 하시는 건 어때요?"하고 여자에게 말을 건네니 여자도 만만치는 않다.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럼 잘못한 줄 알았으면 그냥 오지 않았을 텐데, 잘못한 상황인 줄 몰랐고 불편을 드린 점은 죄송하다 하고 끝내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더 이상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냥 또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둘은 똑같은 말만 주고받으며 지속적으로 소리를 질러댔고, 십여분이 지나 여자의 남편이 내려왔다. 나는 지나가던 사람인데 상황이 위험해 보여 그냥 서있었노라고 여자의 남편에게 정체를 해명한 뒤, 그제야 가던 길을 마저 갔다.


사람의 행동방식에는 그의 과거가 반영된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던 남자의 얼굴에서, 격하고 성난 반응으로 그를 대했을 그의 가족이 보였다.

사과를 못하겠다고 버티는 여자에게서 자존심을 굽히면 안 되는 그녀 안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 느낌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자리에 서 있었던 나를 위한 보상으로 이 상상을 허락한다. 그리고 사람의 화에 대해, 자존심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화로 상황을 다스리려는 자의 몸은 매섭지만 그 마음에서는 어딘지 유약함이 느껴진다. 감정을 감당하기에 유약한 가슴이라 얼음판에 선 것처럼 폴짝거리고, 뜨거운 감자를 쥔 것처럼 정신없이 이 손 저 손으로 감자를 옮겨 쥐는 모습이 그려졌다.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는 것보다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그녀의 모습에서, 무너지지 않으려고 고개를 꼿꼿이 들고 버티는 모습에서, 자신을 지켜내야만 하는 모습이 보였다. 안전하고 보호받고 존중받는 상황 속에서는 자신을 지켜내려 애쓰지 않는다. 자신을 지키려 애써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그 반대의 환경에 놓였을 가능성이 높다.


잠시 옆에 서서 위험을 막았기로 소니 이렇게까지 남의 인생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써도 되나. 사람은 자신의 방식으로 상황을 해석한다. 내가 이 상황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는 것은,  경험과 해석은 나의 것이리라. 즉 나의 투사일 것이다. 내가 받은 보상은 사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나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멈춰 섰던 것 또한 나의 투사이다. 나는 어려울 때 방치되는 것이 외롭고 싫다. 친절과 보호를 받는 것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이런 성향이 가진 나약성은 탈피하고 장점은 키워가려 노력하지만, 오늘 그 상황에서 나의 선택은 나의 투사였던 것이다.


도움인지 오지랖인지 투사인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었겠지만, 앞으로도 위험한 사람을 혼자 두지 못하는 나의 오지랖은 계속 것 같다.


한 줄 요약: 도움을 주러 나선 행동은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나의 투사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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