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경우, 어떤 계기로 강아지를 키우게 되는 걸까. 요즘은 반려동물을 참도 많이들 키운다. 동네를 다녀도 반려동물 용품샵이 즐비하고, 편의점에도 마트에도 반려동물 코너가 마련되어 있을 정도이다.
나는 털 달린 동물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원래는 무서워할 정도였다. 아직도 고양이의 눈빛은 좀 무섭다. 만지지 않고 보기만 하는 새 장 속의 새나 어항 속의 물고기 같은 동물류는 키울 의향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내가 '어느 날 문득' 반려견과의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17년 전 아이를 갖게 될 때도 '어느 날 문득'이었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고 키울 생각은 더더욱 없었던 어느 날, 결혼 후 일 년이 지난 시점이었을 것이다. 우리 부부를 닮은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가 이내 이 생각은 보고 싶다로 바뀌더니 아이를 갖게 되었다.
반려견과의 '어느날 문득'의 시작은 외로움이었다.
평일이면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외로움, 쓸쓸함, 적적함이라는 단어들이 입에서 자주 흘러나오곤 했다. 낮 동안 그림도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집에 들어와 텅 빈 집에 있어야 할 10시간의 시간이 남아있다.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그 시간을 즐긴 것은 두 달 남짓이었다.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은 시간을 보내며 심심함과 적막함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부대끼고 상호작용이 많은 사람들은 관계를 피로하게 느끼기도 할 것이다. 무인도에 뚝 떨어지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하던 관계 속 부대낌이 그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볼 정도로, 적막함은 외로움을 불러온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주인공이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은 윌슨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외로움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공포이다. 독거노인 분들의 삶을 이해해 보게도 되었다. 제일 힘든 게 하루가 너무 긴 것이라는 어르신의 얘기를 듣고 마음이 짠했던 기억이 있다. 한 생을 열심히 살아오신 후 남은 것이 노쇠한 몸과 텅 빈 둥지라니.
나는 공교롭게도 그 생활을 좀 미리 겪는 기분이다. 대신 나의 노년은 좀 편하지 않을까 위로해본다. 혼자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법, 의미 있는 생활을 찾는 법 등을 체험을 통해 찾아가고 있으니.
나의 유년시절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배경과 같다. 옆 집 식구들 사정을 담벼락 너머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두터운 철문으로 닫힌 아파트는 점점 '모름'의 만연을 가져왔다. 어느 때부터인가 모름이 예의가 되고, 알려하는 모습은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만연해가는 것 같다. 요즘은 동네 엄마들도 집을 놔두고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나는 것이 문화가 되었다.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으면 된다는 쉬운 생각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득과 실이 있을 테지만, 이런 현상의 실은 외로움이다. 많은 사람이 반려동물과 마음을 나눈다. 내 사람이라고 말할 만한 긴밀함에 대한 그리움이 반려동물을 찾게 한건 아닐까. 불평, 불만 없고 밥 주고 키워주면, 사람 관계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지 않아도 된다. 나를 좋아해 준다. 관계를 짓고 친밀감을 느끼며 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것이 상실된 구멍이 반려동물로 채워질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