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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성 Nov 30. 2022

단풍이 2

반려견을 들이기로 결정한 날

반려견을 맞이하기 일주일 전 예행연습을 했다. 한 생명체를 들이는 일은 중대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기에, 경솔하게 일 순간의 감정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였기에.


가족회의를 거쳐 반려견을 맞이하기로 결정한 날부터, 나는 최상의 나부터 최악의 나의 상태를 파악해보았다. 그 기준은 반려견의 입장이 아닌 나의 입장이었다.

내가 최악의 상태일 때는 무기력과 무료함이 극에 달해 집에만 머무르게 된다.

내가 최상의 상태일 때는 바쁜 일정으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 운동, 대인관계, 수업, 여행 등의 일정으로 하루하루 즐긴다.


집에 머무는 상태일 때는 반려견을 보살필 수 있으니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집을 비우는 일이 많을 때에 반려견이 겪을 외로움의 시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말하고는 하지만, 과연 그럴까.

주인이 놀아줄 때 놀고, 주인이 산책시켜줄 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극도의 수동적인 삶이 상팔자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등 따시고 배부른 대신 자율성을 상실한 삶을 어느 누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입장을 바꿔 개팔자를 생각해보니 행복할 것 같지 않았다. 내게 개팔자로 살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NO를 외칠 것이다. 나는 배가 고플지언정 자율적인 삶이 좋다. MBTI에서 극 P의 성향을 가진 INFP인 나에게는 더더욱 극명한 초이스이다.

그렇다면 반려견의 복지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나는 최종 결정을 두고 심도 있는 고민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보통 하루 3시간 정도씩 집을 비우고, 월 한 차례 정도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통계치를 얻었다.

그 정도라면 반려견을 외롭게 방치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고, 그 존재를 통한 플러스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주 주말 화창하던 가을날, 펫샵을 방문하기로 한다.


예상했던 견종은 말티푸였다. 몰티즈와 푸들의 믹스종. 반려견 선택의 첫째 조건이 털 빠짐이 적은 강아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비숑으로 하기로 한다. 몰티즈나 푸들은 똑똑한 만큼 예민하고 사람 손길을 원해 분리불안 문제가 생기곤 하는 반면, 비숑은 독립성이 강해 분리불안 문제가 적다는 얘기를 들어서였다.

각 반려견 가정을 보면 반려견들이 그 집안 식구들의 성격을 닮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우리가 선택한 강아지는 독립성이 강한 강아지. 우리 식구들도 모두 독립성이 강한 편인데, 반려견도 독립성이 강한 비숑을 선택하게 되었다. 각자의 삶을 존중하되, '따로 또 같이' 나는 이런 모습을 지향한다.


주인을 만나기 위해 진열장에 놓인 여러 비숑을 보는데, 한편으로는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선택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들. 내가 그런 처지에 놓인다면 얼마나 서글플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진열장을 보는데, 두 마리의 비숑이 눈에 들어왔다. 똘망똘망 영특하고 활발하고 어딘지 모르게 잘난 외모만큼이나 당참이 묻어나는 A와 어딘지 모르게 얌전하고 위축, 주눅이라는 느낌을 풍기는 B.

나는 A와 B 중 B를 선택했다. 잘난 A는 내가 아니어도 누구나 좋아할 것 같았지만, B는 내가 보호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통'한 B는 내 품에 안겨 우리의 식구가 되었다.


작명의 시간이다. 양 씨인 성을 따서, 아치, 몰이, 송이가 후보에 올랐고, 음식 이름으로 작명을 하면 수명이 길다는 소문을 듣고 개꿀이라 지을까도 싶었다. 그러나 최종 작명은 단풍이로 결정되었다. 11/19에 우리 식구가 된 8/31일생 강아지는 첫 식구가 된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단풍이로 불리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단풍이를 차에 태워 안고 오는 길, 그 아름답던 단풍길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생후 2개월 된 작고 여린 생명이 단풍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가족이 되었다. 생후 2개월 만에 단풍이는 사람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의미 있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작고 여린 단풍이를 먹이고 키우는 건 우리가 할 몫이지만, 단풍이는 우리의 마음을 채워줄 것 같다. 과연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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