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도 한몫하고 있음을 알리는 짧은 글
긴장을 하면 윗배가 아팠다.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거쳐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딘가 꼬리가 긴 상념이 끊이질 않을 때, 혹은 조금만 더 가면 고지가 보일 것 같은 대학 입시를 내 손으로 포기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배가 아팠다. 삼일 밤낮을 복통에 시달리며 나는 사람이 아플 때 바닥을 긴다는 표현이 어떤 말인지 뼈 저리게 깨달았다.
어찌 보면 복통은 신호였다. 내 몸뚱이가 살아있다는, 그러나 심적인 고통 때문에 생기는 그런 신호.
어제는 데미안을 읽은 남자와 대화를 했다. 지치지도 않고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는데 여전히 모자라다.
그의 잔에 술을 따르고 손을 거두면서 나는, 아주 잠깐 그때의 복통을 느꼈다. 왜지? 긴장한 탓인가.
정말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생각해왔던 복통이었다. 그래서 등줄기로 땀이 조금 흐르는데, 순간 웃는 당신의 눈과 마주친다. 그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멎는다.
아니야. 평소와는 분명히 다른, 어딘가 이상하고 조금은 놀라운 느낌. 본래 복통은 내게 불쾌하고 괴로운 일이었는데. 왜.
그런데, 행복했다. 그런 어이없는 복통 이후에, 잠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졌다. 나는 왜 여전히 당신 앞에서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걸까. 이걸 당신이 내 약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 몸도 마음도 이상하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술이 아니라 다른 것에 취했는지도 몰라.
정말 복통이었을까.
사실은 배가 아픈 게 아니라 심장이 뛰는 거라면?
혹은 네 입술을 삼키고 싶어서 그런 거라면?
그것도 아니라면 사실, 목이 마른 거라면.
묘했다.
무엇이 됐든, 전의 내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는 사실이.
그러니까, 긴장 같은 게 아니라, 다른 의미의 신호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