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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조 Nov 06. 2023

신혼이 되고서야 아는 것 = 결혼

제 얘기입니다.




10월 22일, 결혼했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일기 같이 써 볼까요?


폭풍 같은 결혼 준비 기간이 끝나고 우기라고는 했지만 비가 하루만 내렸던 행운의 동남아 신혼여행 이후,

스스로가 이렇게나 눈물이 많았나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야심 차게 출근 전 10분, 글을 써 보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어쩌면 정신을 그냥 다른 데로 쏟고 싶었나, 그런 생각도 듭니다.

어느 정도로 정신머리가 예민하냐면, 오늘 아침에 먹은 반찬이 소화가 덜 된 것 같습니다.


10월 22일 이후. 글쎄요. 딱히 달라진 건 없습니다. 감정 조절이 때때로 안 되는 것 빼고. 남편과 한 방을 쓰면서 잠드는 건 생각보다 더 많이 불편(결혼식 당일부터 각방 썼던 사람)했고, 남편은 음식을 남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저는 제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예민한 인간군상 중 하나라는 것도. 우선은 시댁에 다녀와서 이틀 내내 잠을 제대로 못 잤던 것 또한...


더불어 남편은 제게 10월 22일 이후부터 계속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그러니까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혼자 생각하지 말고 의논해."

그런데 저는 이게 얼마나 어려운 고민 이후에 제게 건네는 말인지 다시금 깨닫습니다.


저는 이 공간에 계속해서 드문드문 글을 남겨 왔고, 얼마 전부터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계속 털어놓고 있는데요. 결혼 선배들이 왜 결혼은 현실이라고 하는지 알겠습니다. 다른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더 이상 내 삶의 주인공이 나 혼자 뿐인 게 아니라는 것.


오늘 아침에는 특히나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저의 달라진 레이더망도 스스로 느끼게 됐어요. 남편은 새벽 운동을 하기 위해 헬스장으로 먼저 출근 도장을 찍는데, 저도 모르게 일어나서 꿈지럭 배웅을 하게 됩니다. 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 참고로 결혼식은 다시 못 할 이벤트인 것도 확실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2주 전입니다. 네. 결혼식은 커다랗고 화려한 이벤트이자 쓰나미입니다. 제 인생의 하루를 강타하고 지나간 그 하루 때문에 저는 10개월을 준비했습니다.

이제 아이라도 생기면 아마도 가족이 하나씩 더 생겨 미치도록 바쁜 그 와중에도 행복했던 본식(결혼 기념을) 축하하게 될까요? 그럴 수 있을까...? 드레스가 예뻐서 다행이었어요, 하고 기억하는 본식...


자칫하면 둘 다 불행해지는 게 결혼이라는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 현실을 깨닫고, 무게를 직시하고, 가끔은 먼저 길을 밟아나간 사람들에게 자문도 구하면서. 하지만 분명한 건, 제가 저만의 중심을 먼저 잡아야 하는 게 필요하다는 걸 여실히 느낍니다. 다시 이것저것 손대보고, 공부도 해야죠.


날 좋은 일요일. 그 본식날에 예상외로 울지 않고 관종 신부였던 저는 이제 실전 맵에 떨어졌습니다.

잘 플레이해보겠습니다.

소울 메이트 친구가 보내 준 한약 먹으면서... (이 친구는 광기의 한의사입니다. 제 결혼식 때 축사까지 해 주었는데 그 바쁜 와중에 제 약까지 지어 보냈습니다. 진짜 미친 사람.)


남편이 이틀 전 선물해 준 장미 한 다발을 일터에 꽂아둡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보다 느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제 친구들 중 제가 제일 빨리 결혼했습니다.

어느 인강 강사님이 이야기했는데, 꽃은 피는 시기가 다 다르다고요.

그러니 도대체가 인생의 속도란 건 알 수가 없고, 결혼이라는 건 2주나 지나서야 고찰이 가능한 사건이네요.


남편이 절 사랑해 주는 만큼 저도 저 자신을 사랑해 봐야겠어요.

30년간 연습했는데 실패했거든요.

오늘 출근길을 책임졌던 노래를 두고 갑니다.





V of BTS - Love Me Again

https://www.youtube.com/watch?v=HYzyRHAHJl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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