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삶의 시작!

사자의 서와 미라

by Jin


“선생님, 짐은 좌석 아래나 선반에 보관해 주십시오.”


LA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의 일이었다.

34D 여자 손님께서 보자기로 꽁꽁 싸맨 꾀나 묵직해 보이는 짐을 끌어안고 계셨다. 이륙 전 안전점검을 하던 중, 여느 때와 다름없이 승객께 짐 보관에 대해 협조해 주실 것을 요청했다. 시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승객께서는 아무 말 없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보자기를 더 꼬옥 끌어안았다.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제 딸아이 유골입니다.”

“아……. 네…….”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맞닥뜨리게 된 것은 30대 중반이 되어서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죽음이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닌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일임을 깨닫는데 30년이 넘게 걸렸다.

조부모님은 기억도 없는 어린 시절 돌아가셨고 가깝거나 먼 친척들의 부고 역시 부모님의 일인 줄로만 여겼었다.

하지만 머리가 크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이 생긴다. ‘죽음’ 이 그랬고

나의 첫 장례식장 방문이 그러했다.


평소 가깝게 지냈던 회사 대표의 장례식이었다.

자주 연락을 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비교적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그때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고인의 가정환경, 가족 구성원, 구성원들과의 관계, 그가 생전에 소중히 여겼던 가치, 종교….

고인이 없는 자리에서 더 깊이 고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장례식은 짧은 시간에 누군가를 가장 빠르게 그리고 깊이 있게 녹여낸 의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문화를 살펴보면 구성원의 죽음에 대한 관념, 태도, 종교, 문화, 그리고 그 안에 속해 있는 가치관과 신념에 대해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여러 장례문화 중,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이 남달랐던 이집트인들의 사후 세계관이 매우 흥미로웠다.

왕은 즉위와 동시에 자신의 장례를 준비하며 영원한 안식을 원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파라오의 미라들은 도굴꾼들의 눈을 피해 이리저리 거처를 옮겨야 했다. 그뿐인가. 그들 무덤 대부분은 파헤쳐져 골동품 상인들의 흥정 대상이 되거나 운이 좋은 몇몇 미라들만이 박물관에 안치되었다.


그들에게 사후세계는 어떤 의미였을까?

무덤을 위장하면서까지 그들이 간절히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자의 서>


화면 왼편의 사자死者는 저승의 문지기인 아누비스의 손에 이끌려 오시리스 법정 앞에 서 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심장 무게를 측정하는 의식이 치러진다. 저울의 양쪽 접시 위에는 각각 사자死者의 심장과 깃털이 놓여 있다. 오른편의 깃털은 진리와 정의의 여신인 마트를 상징하는데 사자死者의 심장은 깃털과 수평을 이루어야 내세에서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만약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워 저울이 심장 쪽으로 기울어지거나, 너무 가벼우면 저울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는 암무트라는 괴물이 그의 심장을 삼켜버릴 것이다. 암무트는 앞발은 악어, 몸체의 앞부분은 사자, 뒷부분은 하마의 형상을 한 괴물로 죄가 많은 사자死者의 심장을 잡아먹어 영원한 죽음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저승의 괴물이다.


재칼 형상의 아누비스 신이 저울추를 심사하고, 천문학과 문자, 수학을 발명한 토트 신이 암무트 뒤편에서 결과를 기록하고 있다.

‘심장 무게 달기 의식’을 통과한 사자死者는 매의 형상을 한 호루스에게 이끌려 오시리스 앞으로 나아간다. 재판장인 오시리스는 손에 주권과 지배를 상징하는 도리깨와 왕홀을 들고 머리에는 상하 이집트의 왕관을 쓰고 의연하게 앉아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다.

사자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여러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위 그림은 사자의 생사?를 결정짓는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드디어 사자에게는 천국에서 영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순간이다!



사자의 서? 죽은 자의 책?

<사자의 서>는 ‘죽은 자가 반드시 지녀야 하는 책’ 정도로 요약될 수 있다. 보통은 파피루스에 써서 두루마리 형태로 관 속 미라 곁에 넣어 둔다. 이 책에는 사자의 영원한 부활, 좀 더 정확히는 사자가 내세에서 천국에 도달하여 영생할 수 있는 주문이 들어 있다.

사자가 저승에서 부딪치게 될 장애를 극복하는 방법이나 어려운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지침서가 되는 것이다.

그중에서 앞서 살펴봤던 ‘심장 무게 달기’ 의식을 기술한 제125장이 특히 유명하다.

하지만 <사자의 서>는 전체가 주문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이것을 해설하기란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집트 문자가 해독된 것은 19세기나 되어서였다. 1822년 프랑스 언어 학자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이 이집트 상형문자를 최초로 해독하면서 마침내 이집트 역사는 ‘기록’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사자의 서> 독본 역시 이 젊은 프랑스 학자 덕분에 가능할 수 있었다.


사자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사후세계를 다스리는 오시리스의 법정 심판 외에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조건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시신이 미라로 만들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육체가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죽음관이 미라를 만들기에 이르렀고 도굴꾼들의 약탈을 피해 파라오들의 시신을 이리저리 옮겨야 했던 이유이다.

미라의 주인 격인 ‘영혼의 부활’ 여부는 오시리스의 법정에서 심판받아 결정되는데, 이 심판의 대상은 바로 죽은 자의 심장이다. 이집트인들은 인간의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을 심장이라고 보았다. 즉 심장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덕의 근원인 ‘양심’을 상징했던 것이다.


사자의 영혼은 오시리스의 심판을 통과하고 사자의 육체는 미라로 만들어져야만, 육체와 정신의 재결합을 통해 영원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이집트인들이 가진 죽음관의 핵심인 셈이다.


이집트인들에게 죽음이란 이생에서 저 생으로 옮겨 가는 것이며, 또 다른 삶의 출발점이었다. 이러한 내세관은 이집트의 지리적, 기후적 환경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다. 사막의 건조한 기후와 수분을 빨아들이는 성질을 가진 모래가 죽은 자의 몸을 자연 건조시켜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미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을 목격한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자가 현세와 동일한 신체로 사후세계에서도 삶을 지속한다는 생각을 했다.


미라, who are you?

미라 제작은 BC3000년 이전에 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시신을 모래 구덩이에 묻어 자연 미라를 만들었던 풍습에서 좀 더 정교하고 과학적 기술을 이용해 미라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BC 1000년 전일이다.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의 <역사>라는 책에 의하면 시체를 미라화하는데 약 70일 정도가 소요되는데 방부처리에 들어가기 전 뇌와 기타 주요 장기들을 꺼내는 일부터 시작된다.


- 미라, 부의 상징

미라를 만드는 방법은 사자의 신분, 지위, 부의 정도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고위관리나 왕족들의 미라 제작을 들여다보자.


시신을 썩지 않게 보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했던 것은 콧구멍 속으로 굽은 쇠갈고리 모양의 청동을 넣어 뇌를 긁어내는 일이었다. 이때 사자의 얼굴을 손상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것은 고도의 기술을 가진 숙련된 기술자만이 할 수 있었다.


다음은 몸 안의 내장을 들어낼 차례이다. 왼쪽 갈비뼈 밑에 구멍을 내고 주요 장기인 간, 위, 창자, 폐를 꺼낸다. 내장을 들어내는 가장 큰 이유는 장기들이 쉽게 부패해 버려 시신 보존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시리스 법정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 심장은 꺼내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다. 그리고 나머지 장기들은 중요하다고 판단하지 않았기도 하고, 위치에 따라 꺼내기 까다로운 장기들도 있어 시신에 그대로 남겨두었다.


꺼낸 내장은 즉각 소금으로 방부처리를 한 다음, 항아리에 담아 보관한다. 일명 ‘카노픽 단지’라 불리는 이 네 개의 항아리는 각각의 장기를 지키는 동물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인간의 머리를 한 임세티는 간을, 원숭이의 머리를 한 하피는 허파를, 개의 머리를 한 두아무테프는 위를, 독수리의 머리를 한 케베세누프는 창자를 지키는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이 동물들은 태양의 신, 호루스의 아들로 여겼다.


<카노픽 단지>


내장을 꺼낸 후에는 미라가 쪼그라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향료와 방부제 등으로 배를 채우고 실로 봉합한다.

다음은 시체를 탈수시킬 차례이다. 약 50일에서 70일 동안 소금물에 담가 수분과 지방을 제거한 후 잘 씻어 아마포(얇은 리넨)로 감싼다. 때로는 좋은 향이 나는 천으로 시신을 닦아내거나 피부를 부드럽게 만드는 연고를 바르기도 했다. 왕비나 왕들은 상아나 보석으로 눈동자를 만들어 끼워 넣기도 했고 손톱과 발톱을 붉은색으로 물들이기도 했다.


아마포 역시 최고급 소재를 사용했는데, 이 또한 매우 섬세한 작업이었다. 먼저 손가락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감는 것에서 시작하여 사지와 몸통을 묶고 마지막으로 머리를 감싸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 양팔은 가슴 위에서 엑스자로 교차시키거나, 차려 자세로 허벅지 부분에 고정시켰다. 시신을 붕대로 감는 마지막 작업은 매우 중요한 절차여서 사제의 입회하에 이루어졌으며 붕대 중간중간에는 부적을 끼워 넣기도 했다. 1922년 거의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발굴된 투탕카멘의 미라에서는 약 150개에 달하는 부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정성스러운 붕대 처리 과정을 마치면 미라에 송진을 발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만이 남아있다.

이렇게 완성된 미라는 입관하여 장례식을 준비 중인 유족들에게 보내진다.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운 이 모든 절차를 따라가다 보면 고대 이집트인들이 내세의 삶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 가난한 사람들의 미라

가난한 사람들은 이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미라를 만들었다.


뇌를 들어내는 것은 생략하고 항문으로 삼나무 기름을 주입하여 내장을 녹인다. 그런 다음 바로 탈수 절차에 들어가기 위해 시신을 소금물에 50일간 담가 둔다. 그러면 시체의 뼈와 살가죽만 남게 되는데 이 상태에서 붕대 처리를 하여 미라를 만든다.


이마저도 어려운 사람들은 기름을 주입하는 것을 생략하고 70일 동안 방부처리만 하는 방식으로 미라를 만들었다.

이들은 값이 매우 저렴하거나 재생 아마포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19세기만 해도 미라 연구란 붕대를 풀어내는 일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검사과정도 완벽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미라 자체에 관한 연구보다는 귀중품 수거에 관심이 있던 터라 미라가 손상되는 일이 잦았다.

이러한 미라 연구에 변곡점이 된 것은 1885년 엑스레이의 발견이었다.

엑스레이의 발견은 미라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면서 깊이 있는 연구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미라가 생전에 앓았던 질병이나 사고, 육체적 특징들을 찾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이집트학의 고증과 수고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과학과 의식의 발전으로 미라를 포함한 이집트학의 연구에 새로운 문을 열게 된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이전 혹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스쳐 지나갔을 귀중한 자료에 비하면 그마저도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

오천 년 전 이집트 사람들의 장례문화를 엿보다 문득 우리네 모습을 떠올리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명절이나 제사 때가 되면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놓고 나름의 서열대로 주욱 늘어서서 엄숙하게 절을 올리고는 ‘탁탁탁’ 주인공께서 좋아하셨을 법한 음식에 수저를 올려놓는 풍경 말이다. 언젠간 이러한 풍습도 고대 이집트의 미라만큼이나 고루한 문화로 여겨질 터이다.

그때도 여전히 ‘죽음’을 대하는 공동체 의식은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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