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맛

by 작은나무

사계절 중 가장 좋아하지 않는 계절은 여름이다. 가만히 있어도 이마와 콧등, 인중에 땀이 나고 목과 팔은 수시로 끈적해지며, 조금만 움직여도 얼굴이 달아오르고 괜스레 짜증도 자주 난다. 여름에 즐길 수 있는 시원한 물놀이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여름이 오는 건 반갑지 않다. 하지만 단 하나, 여름에 먹으면 특히 맛있는 음식들이 나의 무더운 여름 나기를 도와준다.


반찬 중엔 열무김치, 과일 중엔 복숭아, 간식 중엔 팥빙수가 바로 여름의 맛을 대표한다. 그저께는 시어머니가 해주신 열무김치를 밥에 얹고 참기름 한 숟갈, 고추장 한 숟갈을 넣고 쓱쓱 비벼 먹었다. 다른 반찬은 필요 없었다. 열무김치가 내는 알싸하고 매콤한 맛, 고소한 참기름 냄새, 마구 버무려진 고추장까지 한 그릇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먹었다기보다 그야말로 해치웠다.


난 임신 중엔 특별히 입맛이 변하진 않았는데 출산 후에 조금 변한 게 있다면 복숭아를 그 전보다 많이 좋아하게 됐다. 아이를 낳기 전엔 복숭아 중에서 딱딱이 복숭아를 더 좋아했는데 지금은 말랑이 복숭아를 더 좋아한다. 분홍빛을 머금은 탐스러운 복숭아 껍질을 까고 말랑한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먹었을 때 나오는 과즙은 환상적이다. 달콤하고 달콤하고 달콤하다. 노랗고 말랑한 것도 좋고 하얗고 말랑한 것도 좋다.


마지막으로 여름을 알리는 맛은 팥빙수다. 여기엔 조건이 있는데 얼음이 그냥 얼음이어야 한다. 요즘은 우유를 얼려 갈아 만든 빙수가 많이 나오는데 어릴 적 먹던 그냥 얼음을 갈아 만든 빙수가 내 입맛엔 더 맞다. 우유 얼음의 부드러운 식감은 없지만 차디찬 얼음과 고소한 팥이 적당한 비율로 만나 입안에서 아삭 거리며 씹힐 때 식감은 한여름 더위를 다 날려버릴 것만 같다. 여기에 과일이나 젤리 등을 첨가해 먹는 것보다는 미숫가루를 살짝 섞어 먹으면 금상첨화다.


그런데 난 왜 이 밤중에 이런 글을 썼을까. 몹시 배가 고파졌고 입이 심심해졌다. 조만간 열무 비빔밥을 먹고 후식으로 복숭아를 먹어야지. 그리고 잠들기 전 팥빙수 한 사발을 먹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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