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구두를 신을 수 있을까

구두 적응 실패기

by 작은나무

내 신발은 전부 굽이 없다. 운동화와 슬립온, 어그 부츠만 있다. 굽이 없는 신발만 신은 지 6년이 넘었다. 다시 말해 구두를 안 신은 지 6년이 넘었다. 구두는 예쁘지만 몇 발짝 걸으면 발 앞꿈치가 아프다. 온몸의 압력이 발가락으로 쏠리는 느낌이다. 불편한 착용감이 싫어서 점점 신지 않다가 임신을 하고부터는 의도적으로 구두는 신지 않았다.


지금은 구두와 완전한 이별을 했지만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는 구두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대학교 입학식 때 매끈거리는 에나멜 재질의 구두를 신었다. 처음으로 구두를 신은 날이다. 3센티미터 굽을 가진 구두였는데 구두를 신은 것만으로 숙녀가 된 기분이었다. 사뿐사뿐 걷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학교에 갔다. 구두를 신었다는 설렘은 잠시였고 처음 겪는 통증이 시작됐다.


집에서 학교는 버스를 타고 지하철 역에 내려 지하철을 40분 타고 환승을 해 30분을 더 타고 내려서 다시 버스를 타고 20분을 가야 하는 거리였다.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그래도 버스와 지하철에선 가만히 서있기만 하면 되니 나은 거였다.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입학식이 열리는 강당까지 걸어가는 길이 구만 리는 되는 줄 알았다. 입학식을 끝내고 집에 온 날, 내 첫 구두는 신발장에 들어가 그 이후 나오지 못했다.


첫 구두가 준 고통에 꽤나 충격을 받았다. 그날 이후 편한 운동화를 주로 신고, 조금 꾸미고 싶은 날엔 굽이 없는 플랫슈즈를 신으며 학교를 다녔다. 2학년 때였나 웨지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웨지힐은 굽이 있긴 하지만 신발 전체에 있는 거라 다른 구두보다는 발에 부담을 덜 주는 구조였다. 거기다 예쁘기도 해서 마음을 뺏겼다. 신발을 하나 사면 닳을 때까지 하나만 신는 스타일이라 민트색 웨지힐을 사서 봄, 여름을 그 웨지힐 한 켤레만 신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오사카로 친한 동생과 여행을 갔다. 민트색 웨지힐을 신고. 우리는 여행 중 하루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끝장을 보자 했고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그곳의 모든 놀이기구를 타고, 모든 퍼레이드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도 봄, 여름 동안 웨지힐 굽에 적응이 됐었는지 참을 만했다. 그런데 해가 질 무렵 본격적인 통증이 시작됐다. 한계점을 벗어난 통증은 걷잡을 수없이 커졌다. 한 발 한 발걸음을 뗄 때마다 곡소리가 났다. 그날 숙소로 어떻게 왔나 기억이 나질 않지 않지만, 너무 아파 눈물이 날 뻔했던 건 기억난다. 아마 나 혼자였다면 진작 울었을 거다. 눈물의 웨지힐은 이후에 당연히 못 신었다. 신발만 봐도 고통이 떠올랐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 게 확실하다. 취업을 하니 또 구두를 신고 싶었다. 스물네 살에 취업을 해 서울에 올라왔고, 신림동에 집을 구했다. 보증금 300에 월세 35만 원짜리 원룸이었다. 저렴한 가격만큼이나 위치가 안 좋았다. 서울대입구역에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15분쯤 가서 종점에 내려 경사가 족히 70도는 될 것 같은 오르막길을 올라가 오른쪽으로 꺾어 첫 번째 집이었다. 퇴근할 땐 오르막이니 괜찮았다. 문제는 출근할 때였다. 구두는 신고 싶은데 길이 너무했다. 그때 내 구두들의 굽은 점점 높아져 어떤 건 거의 10센티미터였다. 그런 신발을 신고 무지막지한 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어쩔 때는 운동화를 신고 내려와 버스 정류장에서 구두로 갈아 신은 적도 있다. 몸에 맞지 않는 구두를 신다가 발목이 꺾이는 건 다반사, 눈길에 엉덩방아를 찧은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실소가 나오지만 10년 전의 나는 그렇게라도 구두를 신고 싶었나 보다.


구두를 안 신은 지 6년이 넘으니 가끔 멋을 내고 싶은 날에 한계에 부딪힌다. 재작년 친구 결혼식 때 집에 구두 한 켤레가 없어서 급하게 굽 낮은 구두를 주문했다. 내 발은 운동화는 235를 신으면 크고 230을 신으면 너무 꽉 맞는 느낌이 드는 크기다. 구두는 맨발이나 얇은 스타킹을 신고 신으니 230을 신어도 크다. 몇 걸음만 걸어도 훌렁훌렁 벗겨져서 225를 신어야 발에 맞다. 그래서 구두를 사러 갔을 때 한 번에 발에 잘 맞는 구두를 사기가 어려웠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사이즈가 없고, 225 사이즈가 있다 해도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디자인과 사이즈가 모두 마음에 드는 구두를 산 날은 그야말로 득템한 날이었다. 이때도 온라인에 225 사이즈는 찾기가 어려워 결국 230 사이즈로 주문하고 스타킹 두 켤레를 겹쳐 신었다. 그래도 컸지만. 안 신더라도 특별한 날을 위해 한 켤레는 남겨두어야 할 것을 모조리 다 버린 내 잘못이다. 어쨌든 이제 구두 한 켤레는 있으니 다행이다.


발이 편해야 몸이 편하다고 한다. 동감한다. 하지만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허리도 꼿꼿하게 세우고 걷던 젊은 날의 내 모습이 때로는 그립다. 걸음마다 나는 또각또각 소리도. 발은 아팠지만 내 키보다 몇 센티 높은 곳을 보며 걷는 기분도 좋았다. 이제는 굽 없는 신발에 익숙해져서 다시 구두를 신으려면 스무 살 때 입학식에 가던 날처럼 고통을 겪어야 할 텐데 그 고통을 이길 자신이 없다. 지금은 바닥과 맞닿은 신발을 신고 걸으며 내 몸이 더 편하길 바란다. 몸이 편해야 마음도 편한 나이가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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