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야근하는 날이면 난 아이들을 하원 할 때부터 신경이 쓰인다. 혼자 둘을 보며 살림까지 해야 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평화로운 하루가 되길.' 기도하면서 아이들을 하원 한다.
작년 12월 8일 화요일, 그날도 남편이 야근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을 하원하고 집에 오면 6시쯤이다. 가방에서 식판, 물통을 꺼내 애벌 설거지를 해두고, 그 사이 아이들은 배고프다며 과자 서랍에서 과자를 꺼내먹기 시작한다. 간식으로 배를 다 채우기 전에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고기를 구웠고 밥을 펐다.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밥을 잘 먹었고 여느 때처럼 돌아다니면서 먹지 않고 제자리에 앉아 먹었다. 평화로운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잠깐의 유튜브 타임. 그 사이 나는 쌓인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하다가 중간중간 아이들의 물 달라, 물 흘렸다, 과자 달라 등 갖가지 요구 사항을 들어주며 거실과 주방을 왔다 갔다 한다. 주방과 식탁 정리가 대강 끝나고 유튜브 타임도 끝.아이들과 개운하게 목욕을 하고 나니 벌써 8시였다. 아이들을 재우기 전까지 뭘 하며 시간을 보낼까 고민했다. "1호야, 2호야. 엄마랑 놀자! 퍼즐 맞출까? 자동차 게임할까?" "겨울 왕국 퍼즐 맞출래." 우리 셋은 퍼즐 맞추기에 집중했다. 난이도별로 각자 한 판씩 맡아 서로 경쟁도 하고 돕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조금씩 완성되는 퍼즐처럼 우리 하루도 평화롭게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너무 평화로웠던 걸까. 어떤 일은 예고 없이 터진다. 예의 주시하고 있을 때는 평온하기만 하다가 순간 방심하면 그때가 전쟁의 서막이다. 1호가 응가가 마렵다고 했다. 작년에 5세였던 1호는 아직 뒤처리는 내가 해주어야 했기 때문에 응가를 다 하면 엄마를 부르라고 한 뒤 2호와 남은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잠깐! 구체적인 상상을 돕기 위해 우리 아이들의 성향을 설명하자면,
1호: 에너지가 넘치는 남자아이. 넘치는 에너지만큼 감성도 풍부하다. 기분이 좋고 나쁨에 따른 표현이 아주 확실하다. 또, 소유욕이 또래 아이들이 비해 강하다. 종이 한 장, 빨대 하나도 소중히 여기고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 집엔 1호 보물 상자가 있는데 거기엔 1호만 알아볼 수 있을 법한 보물(나에겐 언제 처리할지 걱정인 분리수거물)이 잔뜩 들어있다.
2호: 두 살 어린 2호는 오빠를 따라 하길 좋아하는 여자 아이. 순한 편이다. 어쩌다 본인이 잘못하면 뭐라 하기도 전에 먼저 울어버린다. 울 때 숨 넘어갈 듯 운다.
"엄마, 응가 다 했어." 1호의 응가 타임이 끝나고 뒤처리를 해주고 있는데 2호가 화장실로 오더니 입을 '아'하고 벌렸다. 입안엔 과자가 있었다. 그런데 1호가 놀란다. 지나칠 정도로. "2호야, 너 뭐 먹었어? 내 쿠키 먹었어?" "응." "안돼에에에에에에!!!!!!!!!!!" 2호가 먹은 쿠키는 이틀 전 1호와 내가 같이 만들었던 쿠키다. 식탁 한쪽에 두었었는데 그중 하나를 2호가 먹은 거다. 식탁으로 달려간 1호는 쿠키가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내 쿠키!!!! 파리 쿠키가 없어. 으아아아앙!!!"
문제의 파리 쿠키
"1호야, 다른 쿠키는 그대로 있잖아. 눈사람 쿠키도 있고, 똥 쿠키도 있어." "파리 쿠키는 없잖아. 아으아앙아아앙" "2호가 실수로 먹었나 봐. 2호야, 오빠한테 사과해. 오빠가 아끼는 쿠키였대." "아니야, 2호가 사과해도 난 용서 못 해. 으아앙." 2호도 울었다. 오빠가 너무 화를 내니 놀라고 서러웠을 거다. 1호도 서럽게 울었다. 이틀 전에 여러 모양의 쿠키를 만들고 눈사람, 똥, 파리 모양 쿠키만은 먹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습격을 받은 거다. 나도 속으로 울었다. 오늘도 전쟁이구나. 오늘은 평화롭게 넘어갈 줄 알았건만.
"1호야, 너무 속상하지. 엄마랑 내일 또 쿠키 만들자. 파리 쿠리 열 개 만들자."
"2호야, 괜찮아. 오빠가 지금 너무 속상한가 봐. 2호도 모르고 먹은 건데, 그치?"
내 양쪽에서 아이들은 마치 누가 더 크게, 더 오래 우는지 대결이라도 하듯 울었고, 내가 달래는 소리는 아이들 울음소리에 묻혀 나한테도 잘 들리지 않았다.
이럴 때 난감하다. 누구 하나 명확히 잘못한 쪽이 없을 때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서럽고 분한 아이들의 마음을 공감해주고 달래주는 게 엄마 역할인데,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의 마음이 먼저고 하필 남편이 없고 나 혼자인 상황에선 누구를 먼저 달래야 하는 건지 혼란스럽다. 일단 두 아이가 진정하는 게 우선이라 오른쪽 무릎에 1호, 왼쪽 무릎에 2호를 앉혀두고 아이들이 진정되길 기다렸다. 한 시간 같은 20분이 지나고 아이들은 울음을 멈췄다.
"엄마, 나한테 소중한 쿠키야. 내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서 엄마랑 아빠한테 주고 싶었어. 엄마, 아빠한테 자랑도 하고 싶었는데 으아아앙아앙."
"그랬구나. 너무 소중한 쿠키였네. 그래도 다른 쿠키가 남았으니 이건 엄마가 맛있게 먹을게. 똥은 엄마가 먹을 테니 눈사람은 이따 아빠 퇴근하면 먹으라고 하자."
"응. 난 2호 용서 못 해."
"그래. 알았어. 용서 안 해도 돼. 다음에 용서할 마음이 생기면 그때 용서해도 돼."
"엄마아아아아, 내가 오빠 쿠키 먹었어 으아아앙"
"응, 2호야. 2호는 오빠가 아끼는 건 줄 모르고 실수로 먹은 거지?"
"응. 흐흐흑흑."
"실수니까 괜찮아. 다음에는 오빠 거는 물어보고 먹자. 알았지?"
글로 쓰니까 차분해 보이는 대화지만, 실제 상황은 전쟁터였다. 폭탄이 터진 뒤라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완성하지 못한 퍼즐 조각은 거실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어질러진 집만큼 내 머리도 어지러웠다. 어쩐지 평화롭게 흘러간다 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니 어느덧 잘 시간이다. 아이들은 회복력이 얼마나 좋은지 금세 사이좋게 깔깔거리며 놀았다. 별 수 없다. 나도 어지러운 마음 얼른 정리해야지. 그래도 그 난리에 화내지 않고 짜증 내지 않고 대응한 나에게 스스로 박수를 보낸다.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