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이사를 했다. 이사를 결정한 건 100프로 내 의사였다. 6월에 몇 달을 기다린 청약 공고가 떴고 지원했지만 바늘구멍보다 좁은 당첨 확률을 뚫지 못했다. 청약에서 떨어지고 이튿날, 집 앞 부동산에 갔다. 우리 집을 얼마에 팔 수 있는지, 조금 더 넓은 평수의 집은 얼마에 팔리고 있는지 확인했다. 남편은 "굳이 단지 내에서 이사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럴 거면 돈을 더 보태 서울 근처나 서울로 가자." 했지만 지역을 옮기기엔 변해야 할 게 많았다. 아이들 원도 옮겨야 하고, 난 10개월 전 시작한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우리 수중에 가능한 돈도 고려해야 했다. 이런저런 현실적인 사정을 따져보고 단지 내에서 이동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 등원 후 다시 부동산에 갔다. 매물로 나온 두 집을 봤고 그중 한 곳이 마음에 들었다. 남편에게 퇴근 후 같이 보자며 얘기했고 퇴근 후에 남편과 같이 한 번 더 그 집을 둘러봤다. 다시 봐도 내 마음에 쏙 들었다. 하지만 그 집은 전 주인이 깨끗하게 쓰지 않았던 상태라 깔끔한 성격이라면 일인자인 남편은 탐탁지 않아했다. 집으로 와서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이사를 하고 싶은 나와 굳이 이사를 해야 하느냐는 남편은 각자 생각에 잠겼다.
"여보, 어때? 난 마음에 들어. 가격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하고 구조도 좋아. 지금 놓치면 집값이 더 오를 텐데 애들 더 커서 고정지출 늘기 전에 큰돈 쓰자."
"근데 여보, 집 알아본 지 3일째야. 겨우 두 집 밖에 안 봤고. 너무 급해. 더 알아보자."
"어차피 단지 내에서 이동은 거기서 거기야. 가격 맞고 시기 맞으면 옮겨도 되는 거지. 지금이 적기야."
"그래도 그 집은 너무 깨끗하지도 않고 뭔가 끌리지 않아." "여보, 내가 가방을 사 달래? 화장품을 사 달래? 집 하나 사자는 건데. 안돼?" "......." 평소에 물욕이 없는 편인 나는 책 외에 소비하는 게 거의 없다. 가방도 에코백이 제일 편하고 이마저도 여기저기서 사은품으로 받은 것들이다. 화장도 팩트 하나 바르는 게 전부다. 패션에도 관심이 없어 옷이며 신발이며 잘 사지 않는다. 유일하게 꾸준히 사는 책도 결혼 전에 비해 사는 양이 많이 줄어 1년에 스무 권 정도 사는 게 전부다. 후에 남편과 나의 대화를 들은 친구 최 양은 나에게 제정신이냐며 타박했다. 집 사는 걸 과자 한 봉지쯤 사는 것마냥 요구했으니 어이가 없을 만하다. 하지만 고맙게도 남편의 마음은 움직였고(단, 인테리어를 하고 들어가자는 조건을 달았다) 우리는 다음날 가계약금을 쏜 후, 매수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일주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지금 집은 예전 집보다 다섯 평 늘어난 30평이다. 큰 평수는 아니지만 방이 4개라는 특장점이 있다. 보통 30평 집보다 거실과 주방 면적은 작지만 방 4개라는 구조는 나와 남편이 공통적으로 이 집을 사기로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는 자기만의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부기 때문이다. 예전 집도 입주할 땐 분명 안방, 남편 방, 내방이 있었다. 그러나 입주 당시 생후 6개월이었던 첫째가 자라면서 아이 책, 장난감, 옷 등 아이 물건이 내 방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는 내 물건 중 절 반 이상은 정리를 해야 했다. 중고로 팔기도 하고, 무료 나눔도 하면서 내 물건을 줄였다. 줄어든 물건만큼 내 입지는 줄어들었다. 나의 몇 안 되는 물건과 몇십 권의 책들은 펜트리 구석으로, 수납장 빈 틈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남편 방에서, 주방 식탁에서, 혹은 거실 소파나 침대를 옮겨 다니며 내 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번번이 침범당했다. 마치 도서관에서 빈자리를 찾아 공부하다가 자리 주인이 오면 다른 빈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메뚜기 신세 같았다. 내 공간을 잃어버리면서 시간도 잃어버렸고,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도 약해졌다. 이런 나의 방황을 남편도 알았으리라. 아마도 잃어버린 내 방을 되찾아주려는 것도 남편이 이사를 결정하는데 한몫했을 거다. 대문호 버지니아 울프도 말했다. 자기에게 필요한 건 연 5백 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라고. 나는 특별할 것 없는 30대 여자일 뿐이지만 나도 버지니아 울프처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사람이다. 다시 내 방이 생긴 지 5개월째다. 지금 우리 집엔 네 식구가 같이 자는 안방, 아이들 놀이방, 남편 방, 내 방이 있다. 내 방은 우리 집에 있는 방 중에 가장 작은 방이지만 이 방이 갖는 의미는 아주 크다. 이 방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생각도 한다. 거기엔 갈 곳을 잃었던 내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아 정돈되어 있다. 퇴근을 하고 아이들을 하원하고 정신없이 저녁을 마무리하면 잘 시간이다. 우리 부부는 안방에서 아이들을 재우면 안방을 나와 각자 방으로 간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충전 시간을 가진다. 남편은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며, 나는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공부도 하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각자 충전이 완료되면 때로는 함께 야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때로는 누군가 먼저 굿나잇 인사를 하고 안방에 들어가 잠든다. 하루 종일 일과 육아, 살림을 한 우리 부부에게 방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한 공간 개념을 넘어선다. '방이 대수냐 뭘 하든 할 사람은 시간과 공간이 없더라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물론 시공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쓰다가 그렇지 못하게 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보다 자기만의 방이 필요할 거다. 내가 그랬듯이. 당연하게 내 공간을 어디서든 사수하던 나였는데, 요 몇 년 사이 내 공간이 점점 줄어드니 그간 당연히 가졌던 내 공간이 너무 그리웠다.
내 방은 단순히 내 물건을 놔둘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그건 최소한의 조건일 뿐이다. 자기만의 방은 모든 것과 분리되어 오롯이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나를 마주할 시간과 공간이 생기니 하고 싶은 게 많아졌다. 집에 방 하나가 더 생겼을 뿐인데 내 마음의 방도 하나가 더 생긴 기분이다. 그 방엔 오로지 '나'로 가득 채우는 중이다. 오늘도 유한한 방에서 무한한 에너지를 충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