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샴푸로 머리를 감았더니

건강한 머릿결을 유지하는 간단한 방법

by 작은나무

스물두 살 쯤이었다. 대학교 동아리방에서 모임을 하던 어느 날, 동기 남자 애가 말했다.


"진주야. 네 머리는 진짜 개털 같아."

"하... 나도 내 머릿결 안 좋은 거 알아. 왜 이렇지?"


대학생이 됐다는 기쁨에 중고등학생 때 못하던 염색도 하고 파마도 가끔 했다. 하지만 미용실을 갔다 올 때마다 내 머릿결은 상태가 안 좋아졌다. 흡사 잘 말린 북어채처럼 거칠었고 머리 끝은 뚝뚝 끊어졌다. 윤기가 없고 푸석푸석했고 항상 정전기가 발생한 것처럼 들뜨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한마디로 산발이었다.


친구가 내 머리가 개털 같다고 한 며칠 뒤 주말이었다. 당시에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멀어 외가에서 지내고 있었다. 격주로 주말마다 이모들과 목욕탕에 갔었다. 그날은 큰 이모와 목욕탕에 가기로 했다. 나갈 준비를 하느라 목욕 바구니에 바디워시, 때수건, 발 각질제거제 등을 챙겼다. 집을 나서려던 찰나, 목욕 바구니를 본 이모가 말했다.


"이 샴푸는 솔이 샴푸잖아. 이걸 왜 챙겨."

솔이는 외가에서 키우던 강아지다.

"이모, 무슨 말이야? 솔이 거라니. 나 이때까지 이걸로 머리 감았는데??"

"여기 개 그림도 있잖아. 몰랐어?"

"헐. 몰랐어. 샴푸라고 적혀있어서 그냥 썼지."


쓰던 샴푸가 떨어져 새 샴푸를 쓴다고 한 게 3주 전이었으니, 대략 3주가량 사용했을 때였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개 샴푸로 이제껏 머리를 감았다고? 샴푸통에는 가운데에 요크셔테리어가 우아하게 앉아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그 위에 shampoo라는 글자가 더 크게 적혀있었다. 샴푸라고 적혀있었기에 당연히 (사람)샴푸라고 생각했고, 한 번 그렇게 생각하니 굳이 통을 유심히 볼 필요가 없었던 거다. 의심할 수 없게 거품도 적당히 났고 향도 좋았다.


그래서 내 머릿결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가? 물론 개 샴푸로 머리를 감은 게 머릿결에 악영향을 준 게 아니라는 거 그때도 알았고 지금도 안다. 어떤 개들은 사람보다 더 찰랑거리고 부드러운 털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머릿결이 안 좋다고 '개털'이라고 폄하해서 비유하면 안 된다. 하지만 그때 내 머릿결은 하루가 다르게 엉망이 될 때였고 마침 개 샴푸를 사용한 것이 밝혀졌으니 나름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생각할수록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해결책은 보였다. 간단했다.


사람 샴푸를 쓰면 되잖아!


간단하지 않았다. 전혀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꾸미는 것에 크게 관심은 없었지만 그래도 인상을 좌지우지하는 머리를 매일 묶고 다닐 수만은 없었다. 묶는 것도 머릿결이 안 좋으니 단정하지도 않고 별로였다. 머리를 자르자니 짧은 머리는 영 자신이 없었다.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다니고 싶었지만 빗자루처럼 뻣뻣한 머릿결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 상한 머리는 잘라내고 미용실에 가지 말자고. 머리에 관심을 두지 말자고.


아이는 관심을 먹고 자란다 했던가. 아이와 반대로 머리는 무관심 속에 쑥쑥 자라고 있었다. (사람)샴푸, 트리트먼트, 헤어팩 모두 소용없었다. 무관심이 약이었던 거다. 무관심이라는 약을 먹은 머리는 건강해졌다. 윤기를 찾았고, 더 이상 끊어지는 머리카락도 없었다. 그 이후, 내 헤어스타일의 큰 변화는 취직하고 나서 3년 동안 두 번, 결혼을 앞두고 한 번 있었다. 그 외에 미용실에 가는 목적은 머리를 자르는 것뿐이었다.


작년에 5년 만에 볼륨매직을 했다. 아직까진 차분한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애써 무관심 하기'와 코로나가 합쳐져 미용실에 가지 않는 동안 머리가 허리까지 길었다. 지난 주말에 머리를 말리다가 언제 이렇게 길었나 새삼 놀라웠다.


"여보, 나 머리가 이만큼이나 길었어. 긴 머리 웨이브펌 하고 싶은데 해볼까?"

"응. 여보 주말에 예약해."

"머릿결 상하진 않겠지? 지금 딱 건강하고 좋은데."

"한 번인데 괜찮겠지."

"그래. 긴 머리 웨이브펌은 내 로망이었어. 다음 주에 미용실 예약해야겠어."


긴 머리 펌은 나에게 로망이었다. 스타일도 원하는 대로 잘 나오지 않았지만 그보다 조금만 머리에 약을 쓰면 머릿결이 상해서 쉽게 도전하기 어려웠다. 오랜만에 도전해 봐야겠다. 긴 생머리를 예쁘게 말아봐야지. 이번 주 토요일, 난 미용실에 갈 테다. 그리고 말해야지.


"이런 스타일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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