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가 조금 넘게 걸린 인테리어가 끝나고 드디어 본격 5도 2촌 생활을 위한 1단계가 완료되었다. 집만 사면 끝날 줄 알았더니 집을 사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15평 소형 아파트지만 집 크기와 상관없이 살림살이를 채워 넣어야 했다. 물론 최소한의 가전과 가구, 물건들만으로도 세컨하우스를 이용하기엔 별 문제가 없을 수 있다. 조금 불편한 건 하루 이틀이니 참거나 근처에서 대체할 만한 것들을 사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이었고 남편 생각은 달랐다. 어쨌든 우리 가족이 이용할 집이니 이왕이면 최대한 갖춰두었으면 한다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여러 날의 설득과 협의를 했지만 결국 남편 의견을 따르기로 하고 온오프라인에서 집에 필요한 가전, 가구, 생활용품 등을 구매하였다. 그런데 우리 부부가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있었다. 작은 물건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크기가 다소 큰 가전이나 가구가 문제였다. 태안은 지방이라 배송 요금이 별도로 추가되는 경우가 많았고 배송일도 일주일에서 길면 이주일이 걸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나마도 배송이라도 되면 다행인 게 처음부터 배송이 불가능해 주문이 안된다든지 주문을 했는데 배송불가라며 취소되는 경우도 있었다.
수도권에 살면서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점심 먹고 느긋하게 주문해도 다음날 오전이나 어쩔 때는 그보다 빠른 주문한 당일 밤 12시가 되기 전 물건이 도착하던 게 일상인 우리 부부에게 느리거나 혹은 배송이 불가능해 주문이 안 되는 상황이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금세 적응됐고 동탄으로 우선 배송하여 태안으로 가져갈 물건과 태안에서 바로 받을 물건을 구별해 주문하였다. 거의 매일 동탄과 태안 집 앞에 택배 상자가 쌓여갔고, 세컨하우스는 텅 빈 공간이 아닌 우리 가족을 품어줄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현재 90% 이상 완성된 아직은 부족하지만, 작고 소중한, 어쩌면 작아서 더 소중한 세컨하우스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현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신발장은 기존에 있던 것을 철거하고 새로 설치했다. 구축의 특성상 팬트리가 없는데 신발장 절반은 수납공간으로 사용하는 중이다.물티슈, 휴지, 모래놀이 도구 등을 넣어두었다.
그리고 현관 벽에 레몬트리 사진 포스터를 붙여놓았는데 허전한 벽이 조금이라도 상큼해 보였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하얀 벽의 포인트가 되기도 하지만 현관을 오갈 때 이 포스터를 보면 노란 레몬 덕분인지 싱그러운 초록잎 때문인지 기분이 좋아진다.
현관에 들어서면 주방을 지나정면에 3 연동 중문이 보이는데 중문을 열면 거실 겸 큰방이 나온다. 이 방엔 소파와 테이블 겸 식탁, 텔레비전이 있다. 15평이지만 다른 가구나 없어서인지 좀 더 넓게 사용할 수 있다.
작은 방엔 침대와 작은 헹거만 두었다. 침대는 슈퍼싱글 사이즈라 허리가 아프다며 바닥에서 잠을 자기 힘들어하는 남편과 그날그날 아빠와 자고 싶은 아이 한 명이 함께 잔다. 나와 다른 아이 한 명은 거실에서 토퍼를 깔고 잔다.
작은방 사진은 자세히 보면(아니 어쩌면 대충 봐도) 속임수가 있다. 바로 창문인데, 지금 사진으로 보이는 창문은 가짜다. 아주 큰 사이즈의 패브릭 포스터를 걸어두었다.천 뒤로 진짜 창문이 있다.
복도식 아파트 1층인 우리 집은 작은 방 창문을 열면 복도가 보인다. 거기다 창문에 창살까지 있다. 평소에 창문을 열 일이 잘 없고 열었을 때 보이는 풍경도 그다지 좋지 않아서 패브릭 포스터로나름대로는 단점을 보완하려고 애써보았다. 몇몇 친구들에게 말없이 사진을 보냈을 때 눈치채지 못한 걸로 보아 효과는 있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공간은 주방과 화장실이다. 주방은 상부장 없는 주방으로 만들었고 냉장고도 소형으로 샀다. 상부장을 없앤 이유는 세컨하우스이니만큼 살림살이를 최소화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수납공간을 부족하게 함으로써 강제로 물건을 들이지 않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소형 냉장고를 고른 이유도 상부장을 없앤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화장실은 매일 관리하지 못하니 시간이 흘러도 색이 덜 변질될 만한 어두운 톤으로 골라봤고 요즘 유행한다는 템바보드 스타일 벽으로 선택해보았다. 나중에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으려나 걱정을 조금 했지만 인테리어 스타일은 한 번 유행하면 10년도 간다는 인테리어 사장님 말을 믿고 선택해봤다. 일단 지금은 대만족이다.
잔금을 치르고 집을 본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까지 약 40일 정도 걸렸다. 세컨하우스에서 첫밤을 보낼 때는 아직 우리 집 같지 않고 다른 집에 놀러 온 듯 약간은 어색한 기분이 들었는데 지난 주말에 묵었을 땐 우리 집이라는 생각이 들어 편했고동시에 여행 온 기분까지 들었다.
아직은 채워지지 않은 10%가 있으니 다소 불편한 점도 있긴 하다. 하지만 아이들과 편하게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날씨가 좋으면 근처에 차로 20분 내로 갈 수 있는 바다가 십수 개가 있고 나름 맛집들도 곳곳에 있어서 제법 여행 온 기분을 낼 수 있었다. 이번에 내려갔을 땐 친정엄마도 함께 가서 수목원과 바다 풍경을 한가득 눈에 담고 마음에 담고 왔다.
청산수목원
파도리 해수욕장
2박 3일의 세컨하우스 생활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준비를 했다. 집안 곳곳을 쓸고 닦고 사진을 찍으며 생각했다. 이 집이 우리 가족뿐 아니라 다른 가족들, 친구들, 지인들과도 기억에 남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겠다고.
그리고 일상을 떠나 세컨하우스로 가는 게 아니라,나에게또 다른 일상이 생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가며 살고 있는 두 집은 우선순위가 있는 게 아닌 똑같은 가치를 지닌 공간이 된 것이다. 올라오는 길에 작지만 소중한 공간, 세컨하우스 사길 참 잘했다며 스스로 칭찬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