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에 흐르는 시간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건 모월 모일이 모월 모일로 되는 수많은 날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새해를 맞이하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흐르는 건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조건이고 그것에 의미를 두느냐 아니냐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리고 그 마음은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에 영향을 줄 거라는 뻔한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예전엔 전혀 몰랐던 사실인 거처럼.
나이를 세는 법이 몇 개월 전부터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 적응이 덜 되서인지 해가 바뀌니 한 살 더 먹은 기분이다. 그렇다면 한 살 더 먹은 만큼 경험치가 쌓여야 하는 거 아닌가, 내 나이에 맞는 사고를 하고 예전보다 성숙해졌나 등등 자조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면의 성장 외에도 외적으로도 내가 이룬 일, 해나가고 있는 건 뭐가 있을까. 해야 해서 하는 그런 일 말고 의지를 갖고 열심히 했던 일이 뭐가 있었나 떠올려보면 딱히 없다. 갑자기 슬퍼졌다.
스스로를 전형적인 P, 무계획형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눈앞에 닥친 일, 해치워야 할 일을 먼저 하고 남는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이나 휴식을 하려고 하니 언제나 시간과 에너지가 모자랐다. 그러다 문득 요즘말로 현타가 왔다. 하고 싶은 일을 뒤로하고 급한 불을 먼저 끄는 게 일상이었는데 급한 불조차 제대로 끄긴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거기엔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면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하나둘씩 기어이 찾고 마는 내가 있었다.
2023년 12월은 유난히도 일상 속 자잘한 균열이 많았던 달이다. 업무에서 평소 하지 않던, 하면 안 되는 실수도 하고, 머릿속에 하고 싶은 건 이것저것 떠오르는데 정리는 되지 않고, 매번 떨어뜨려도 멀쩡하던 핸드폰도 12월을 못 넘기고 박살이 나버리는 등 유난히도 길게 느껴졌던 한 달이었다. 핸드폰 액정이 깨져서 아무것도 볼 수 없고 할 수 없을 때 12월의 불안 불안했던 내 마음도 와장창 깨진 듯한 느낌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새해에 좋은 일이 얼마나 기다리고 있길래 연말에 액땜을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다고 주변에 말하기도 했다.
12월이 끝나면 그간의 안 좋은 기운도 해가 바뀜과 동시에 싹 씻겨져 갈 것 같은, 부디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 아주 크게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다가오는 새해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가만히 있는데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도와줄리는 없으니 내가 조금씩이라도 달라지는 게 우선이다. 그래서 약간 무리를 해보기로 했다.
원래 내 인생의 모토는 무엇이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자는 느슨한 행동파지만, 왜 때문인지 무리하지 않겠다는 그 선을 지키느라 내가 원하던 내 모습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무리하지 않고 남겨둔 에너지에 새로운 에너지를 합쳐 여유롭지만 내실 있는 결과가 있는 삶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게으름이라는 장애물이 너무나 단단하게 박혀 무리하지 않는 딱 그만큼, 가끔은 그보다 못한 결과가 나왔고 처음엔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 하던 내가 이 루틴이 좋은 흐름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게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거다. 오히려 약간의 무리를 하고 소진된 상태로 아쉽든 만족하든 결과를 내보는 게 돌아보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한다.
2024년엔 좀 더 일상에 힘을 줘서 내가 스스로 한계라고 그었던 선을 나에게서 최대한 멀리 그어보려고 한다. 내 능력치보다 조금 더 계획해 보고, 평소 하던 것보다 조금 더 힘을 내보는 등 무리해서 내 삶을 나아지게 하는 데 유리해진다면 올해는 기꺼이 무리해보고 싶다.
새해에는 흘러가는 시간을 잠깐 멈추어 세워 나의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의미 없이 지나친 순간도 그러모으면 하루를 사는 비타민 한 줌이 될 거라 믿어요. 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 쓰는 작가 다섯이 꾸려가는 공동매거진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구독하고 당신의 일상에도 영양을 듬뿍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