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엔 임밍아웃, 서른아홉엔 암밍아웃

by 작은나무

유방암을 진단받기 전, '암'과 '나'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여러 날 동안 가끔 '내가 만약 암 혹은 희귀 질환, 난치 질환 등의 진단을 받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변에 말할 것인가? 말한다면 어디까지?' 이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여러 번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비슷한 상황이 있거나 한 다리, 두 다리 건너 누군가의 소식을 전해 듣거나 할 때, 나라면 어떻게 할까? 얕은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깊이 고민하지 않았던 이유는 정말 나에게 암이 올 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얕은 고민의 결과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야지'였다. 나 혼자만 알고 있고 몰래 병원을 다니면서 티 내지 않으면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을까. 하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가능한 생각을 했었다. 막상 내 일이 되고 보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진단부터 치료까지 하기에는 시간이 짧지 않고 무엇보다 도움이 필요했다. 수술 전까지는 몸이 멀쩡해서 육체적인 도움은 필요 없었지만, 어딘가 우울해지는 마음은 도움이 필요했다. 이때 암 진단을 밝힌 후 받는 진심이 담긴 위로와 응원 등이 나에게 많은 힘이 되었다. 그리고 수술 후는 당연히 가족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지인들을 만나도 식단에서 제한되는 부분이 있어서 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말을 하는 편이 후련했다.


문득 10년 전 첫째를 임신하고 임신 소식을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알렸을 때가 떠올랐다. 임밍아웃, 암밍아웃. 그야말로 글자로는 점 하나 찍고 안 찍고의 차이인데 그 무게감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임신 소식을 전하는 나는 설레는 마음과 이 소식을 어서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10년이 흘러 암 소식을 전하는 나는 무거운 마음과 말해도 될까 안될까 고민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듣는 사람이 내 소식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당황하거나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콩알만 한 크기의 세포가 내 몸 안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같지만 그 세포를 40주 동안 고이고이 품어 무럭무럭 키워서 최대한 주수를 채워 안전하게 몸 밖으로 내보내고 싶은 임신과, 혹시나 조금이라도 더 튼튼해지고 커질까 걱정되고 하루라도 빨리 내 몸에서 쫓아내고 싶은 암은 비교불가인 것이다.


나의 암밍아웃 순서는 남편과 친정엄마, 동생, 친한 고향 동생이 처음이었다. 이들에겐 암을 진단받기 전 조직검사를 했을 때부터 말했다. 엄마랑 같이 살지 않았으면 조금 더 천천히 말할 수 있었겠지만 육아 도움을 받으며 한 집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암 진단을 받고 나서 친한 친구와 지인들에게 알렸고, 직장에도 알렸다. 인맥이 좁은 탓에 소수의 사람만이 내 소식을 알았지만 소수가 나에게 보내는 마음만큼은 깊고 넓었다. 그리고 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올해 초4, 초2가 되는 아이들에게도 며칠간 엄마의 부재를 설명하기 위해 말을 해야 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 가슴에 혹이 생겼는데, 이건 수술해서 제거해야 한대. 그래서 나중에 며칠 병원에 입원해야 해" 정도로만 이야기했다. 그렇게 암밍아웃을 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자려고 누운 어느 밤. 첫째가 말했다.


"엄마, 근데 엄마 가슴에 그 혹이요. 혹시 암은 아니죠?"

"어. 아니야. 왜?"

"아, 암이면 죽을 수도 있잖아요. 큰아빠도 암으로 아파서 돌아가셨잖아요."


우리 가족은 아직 채 2년이 되지 않은 과거에 암으로 가족을 떠나보냈다. 남편의 친형, 나에게는 아주버님이었고 아이들도 큰아빠를 잘 따랐기 때문에 온 가족이 지금도 그 상처가 미처 아물기 전이다.


아들에게,

"암이라고 다 죽는 거 아니야. 잘 치료해서 더 건강해질 수도 있어. 그리고 암이 아니라 해서 안 죽는 것도 아니고."(너무 직설적으로 말했나 싶기도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한다. 난 대체로 F성향이지만 아이들과 대화할 땐 T성향일 때가 많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어쨌든 위와 같은 이유로 시댁에는 가장 늦게 소식을 알렸다. 모든 검사를 끝내고 다른 부위에 전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수술 일주일 전 내 소식을 전했다. 놀라셨지만 그래도 초기이고 수술할 수 있음에 다행이라고 서로 다독였다.


요즘은 3명 중 1명이 암이었거나 암이라고 할 만큼 암 환자가 많아졌다. 나처럼 비교적 젊은 나이에 진단을 받는 사람도 많아졌고. 그렇지만 그 수가 많아졌다고 암이라는 병이 가진 무게, 공포심은 절대 가벼워지지 않았다. 소식을 전하고 나도 누군가의 소식을 들을 때 한 글자에서 느껴지는 막연한 두려움이 컸다. 그래도 그 무거움보다 나를 위해 신경 써주는 행동과 말과 글들, 자기가 가진 종교에 기도해 주는 마음, 종교가 없다고 하늘에 기도해 주는 마음 등의 무게가 더 커서 그 덕분에 더 단단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을 때, 위로가 되고 싶을 때 어떻게 하면 더 좋을지를 이번 계기로 제법 많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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