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규 Feb 21. 2019

외계인의 언어로 생각하는 법

영화 컨택트 감상평


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스가 두 외계인에게 붙이는 "애벗"과 "코스텔로"라는 별명은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듀오의 이름이다. 이들의 대표작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1루수가 누구야?"가 있는데 (https://youtu.be/3DNaj8R4HJg) 타임지 선정 20세기 최고의 개그로 꼽힌 적 있는 이 만담은 논리학 논문에서도 예시로 인용된 바가 있다. 기호 논리학에서 구분하는 단어의 "사용"과 "언급"으로 비롯되는 오해에 관한 재미있는 사례로. 그래서 외계인의 별명을 이 만담 듀오로 짓는 부분은 의미심장하다. 컨택트는 바로 언어와 소통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언어란 그 존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사고방식을 형상화 한 기호다. 만일 좌우가 반대로 된 세계의 사람이 있다면 방금 문장을 "면다있 이람사 의계세 된 로대반 가우좌 일만" 라고 쓸 지 모른다. 좌우 반대에다 어순이 중앙으로 모이는 세계라면 "일만 면다있 가우좌 이람사 로대반 의계세 된"이라고 쓸 수도 있다. 움직이지 않는 존재에게 언어가 있다면 동사가 아예 없을 것이고, 집단의식을 갖는 군체 생물에게는 "나"라는 1인칭의 개념이 아예 없을 것이다. 컨택트의 재미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초반에 관객을 압도하는 미지와의 조우-라는 소재는 시각적으로 놀라우나 그리 새로울 건 없다. 대신 조금 다른 부분을 탁월하게 파고들었다. 외계인의 언어는 과연 그들의 어떤 특질을 반영하고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꽤나 디테일 한 표현과 대답을 내놓기 때문이다.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는 시종일관 호기심을 자극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건가, 그들은 무엇인가, 이건 또 뭔 소린가. "자 여길 보세요"라고 알려주는 포인트에 집중하다 보면 놀라고 혼란스러워하다가 결론에 도달하고, 흩뿌려진 복선들이 한 줄로 꿰맞춰진다. 완벽히 의도된 방향으로 관객을 끌고 가는 서술 트릭은 결말부의 루이스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다만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개념이 우리에겐 숨쉬기처럼 당연한 일이라, 가장 놀라워야 할 부분을 쉽게 납득하고 공감하기 어렵다는 점이 이 영화가 지닌 치명적인 약점이다. 스탭 롤이 올라가고 불이 켜진 순간 극장의 웅성거림이 이 의혹을 반증했다. (네이버에 컨택트를 검색하면 "해석"이 연관 검색어로 뜬다) 아마도 이 영화는 크게 흥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한 달 내에 극장에서 내려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스포일러 안 하고 얘기하자니 이렇게 빡센 영화도 오랜만이었다. 이건 전에 본 적 없는 SF 영화다.


2017.02.04

작가의 이전글 실전적인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