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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규 Apr 06. 2019

여러분 뮤지컬 보세요

전자레인지 체험

"맘마미아"라는 유명한 뮤지컬이 있다. 스웨덴 팝 그룹 ABBA의 전설적인 히트 넘버로만 이루어진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즉, 이 뮤지컬엔 이것만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가 하나도 없다. 노래는 가져왔어도 이야기는 창작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하나로 이어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건 아마 누구나 생각해 본 일 아닐까? 물론 그전에 그럴 만큼 히트 넘버가 많은 가수여야 하겠지만.


이야기는 그리스의 칼로카이리 섬에서 살고 있는 모녀에게서 시작된다. 도나는 섬에서 작은 호텔을 경영하며 살고 있는 중년의 미혼모이다. 그녀가 홀로 키워낸 스무 살의 소피는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아빠가 누구인지 모르고 살던 소피는 어느 날 엄마의 일기에서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엄마의 젊은 시절, 자신이 생겼을 무렵 엄마와 섹스했던 정자 제공자(…) 세 명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녀는 엄마 몰래 자신의 결혼식에 엄마 이름으로 세 남자를 초대한다.


써 놓고 보니 굉장한 이야기다. 스무 살답다고 할까. 엄마 생각이 어쨌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아빠 후보자 세 명을 결혼식에 부른다는 발상은 지중해에 사는 스무 살의 소녀가 아니면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결혼식을 하는데 왜 굳이 엄마가 섹스했던 옛 남자 세 명을 불러야 했는지 궁금했지만 보다 보면 자연스레 알 수 있다. 중년의 로맨스와 젊은 날의 추억, 소피의 자아 찾기까지. ABBA의 명성과 히트 넘버를 이용한 안이한 뮤지컬이라는 소리도 제법 되는 모양이지만 글쎄, 보고 나면 그게 오히려 편협하고 경직된 험담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맘마미아의 영화판에서는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배경인 지중해에 걸맞게 내내 수영복을 입고 등장해 화면을 채웠다는데 뮤지컬에서는 도무지 한심하게도… 아니 이 얘긴 그만두는 게 낫겠다.  


매번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뮤지컬의 배우들은 미묘하게 표현하는 법이 없다. 극장 바깥에서 만났던 사람들처럼 미묘한 표정 속에 의중을 헤아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크게 웃고, 크게 화내며, 크게 슬퍼하고, 크게 즐거워한다. 이 감정을 노래와 춤을 통해 몇 배나 증폭되어 객석에 라이브로 전달한다. 정말 절실히 지금 그 감정을 내게 전하려고 혼을 태운다. 후광이 비쳐 보일 정도로. 그런 마음에는 나도 압도되어 “오오” 하며 볼 때마다 순수하게 감탄하게 된다. 하긴 모두가 그렇게 강렬하게 마음을 전달해서야 도무지 피곤해서 살 수 없을 테지만.


그나저나 뮤지컬의 관람은 생각보다 엄격해서 영화처럼 간단히 보기가 어렵다. 기본적으로 매우 고가(5~10만 원)인데 공연 시간에 늦으면 입장조차 할 수 없다. 관람 중 팝콘도 먹을 수 없다. 나도 누군가 표를 들이밀며 보러 가자-라고 하지 않는 한 좀처럼 볼 기회가 없다. 요컨대 이건 꽤 진입 장벽이 있는 예술 분야인 셈이다. 하지만 기꺼이 한 끼 정도의 한우를 포함한 식사를 포기하고서라도 그럴 만한 가치는 있다. 마치 전자레인지에 넣는 것처럼 쿵, 하고 문을 닫고 다이얼을 돌리는 것이다. 조리 강. 160분. 그리고 마치 마이크로 웨이브가 재료 속의 수분을 충돌시켜 열을 내는 것처럼 그 강렬한 음압에 속에 있는 무언가가 따뜻해지다가, 시간이 지나 막이 내리고 문이 열리면 거기 들어가기 전과는 약간 다른 인간이 되는 게 아닐까. 뮤지컬이라는 형식의 예술을 체험했던 사람과 아닌 사람에게는, 타인의 감정에 반응하는 민감함이 적어도 반뼘만큼은 차이가 날 거라고 조심스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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