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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규 Apr 16. 2019

그날은 뭐였을까


2014년 4월의 그날은 다른 날과 다를 게 없었다. 화창했고, 세상은 이런저런 문제가 있었지만 그런대로 굴러가고 있었으며, 약간 나른해지기까지 한 어느 봄날의 오후였던 기억이 난다. 그저 가십거리를 전하듯, 친구가 지나가듯이 전했다.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가는데 사고가 났대. 아이고 그거 어쩌나, 다친 사람은 없대? 응, 뭐 곧 구조되겠지. 부모님들 걱정되겠네. 마치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미국 대공황의 소식을 전해 듣던 피츠 제럴드처럼, 아마도 우린 해프닝이라고 믿었던 그 사건이 미칠 영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피츠 제럴드가 그보단 아내 젤다의 정신병과 본인의 슬럼프를 더 신경 썼듯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근본을 뒤흔들 진실이 민망하게 드러나기 이전이었다.


개인에게나 국가에게나 어떤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분수령이 있다. 미국의 대공황이나 베트남전, 너바나의 네버마인드,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이나, 노르망디 상륙작전 같은. 당장에야 알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일으킨 정신적 충격이 사회의 기본 인식 구조를 뒤바꿔 버리는 그런 전환점. 아마도 21세기에 한국에서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을 역사가가 기록하게 된다면 그 해의 그날은 확실히 그런 면이 있었다. 국가가 국민을 구하지 않고,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조롱했으며, 명백한 불의가 벌어지고 있는데 발만 동동 구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이 모두를 절박하게 만들었다. 모두가 공유하는 단 한 가지의 감상은 분명했다. 이 나라는 지금 “무언가” 잘못됐다. 인정하기 어렵지만 그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재난은 종종 국가 시스템의 한계를 체감하게 만든다. 세상에 무엇도 완벽한 것은 없다. 수많은 생명이 꺼지고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슬픔이 지난 뒤에야 시스템을 정비하고, 다시 그런 아픔이 국민을 상처 입히지 않도록 하기 마련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여러 번 그런 체험을 겪었다. 성수대교와 삼풍 백화점이 무너지고 나서 무분별한 토건주의가 초래한 비극을 절감했고, 대구 지하철의 참극으로 공공 안전에 대한 방비책이 마련되었다. 그래도 그땐 시스템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고 있었다. 공공기관은 재난을 수습하려는 의지가 있었고, 죄 없이 희생당한 이들에 관한 존중과 애도를 잃지 않았다. 샘물 교회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독선적인 의지로 중동에서 피랍되었을 때, 천문학적인 협상 금액을 지불하면서도 국가는 국민을 구하려는 의지를 잃지 않았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은 이제껏 대한민국 국민이 느껴본 적 없는 형태의 재난이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고 권력은 부패하지만, 국가가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공유 관념의 붕괴였다.


이미 대한민국 사회는 갖가지 측면에서 그러한 징후를 보이고 있었다. 한국 전쟁 이후 국민의 희생이 국가 성장의 원동력이 된 때, 여기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일은 드물었다. 우리는 부유해지기 위해 일했고 다소간의 희생은 감수한다. 많은 문제들은 그 이후에 자연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이 지배했다. 그 결과 우리는 재벌 독식 구조의 경제 체제를 만들어 냈고, 무능하고 부패한 데다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정치인을 낳았으며, 과거에 못 미치는 저성장의 시대를 타개하겠다고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인 부의 증대는 결코 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권력은 점점 사회 구성원의 안전과 행복에 관심이 없었다. 우리가 믿어왔던 그 유토피아는 덧없는 환상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세월호를 기점으로 더없이 음울한 인식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믿어왔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가 그날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 유가족들의 아픔에 감상적으로 동조하기 때문이 아니고, 단순히 그 뒤로 이어진 추태에 분노하기 때문도 아니다. 세월호는 그네들이 말한 것처럼 본질적으로 교통사고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사고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추악함을 민망하게 드러냈다. 아이들이 그만큼 고통 속에서 죽어갈 때 어른들은 그들을 구할 수가 없었다. 참을 수 없어서 달려간 이들은 바보 취급받았고 검찰에게 소송을 당했다. 슬퍼하는 유가족을 조롱하며 화내는 이들의 입을 틀어막고 국민을 지켜야 할 공공이 권력을 수호했다. 그건 단지 우리 사회가 가진 더 큰 위험에 대한 일부일지도 모른다. 이래서는 안 된다. 대체 이 많은 슬픔을 다 어쩌려고 이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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