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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규 Feb 10. 2019

사라진 언어의 구사자

얼마 전에 알고 지내던 J 씨로부터 오랫동안 만나던 연인과 이별을 겪었다는 이야길 들었다. 두 사람은 스무 살 때부터 만나 지금까지 대략 8년을 만나왔다. 그쯤 되면 서로가 없는 인생을 상상하기 더 어렵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긴 하겠지만, 그쯤 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안녕을 고했다면 그것은 제삼자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뛰어넘는 일이라 그랬구나-라는 대답 외엔 달리 할 말이 없게 된다.


흥미가 가는 부분은 J 씨가 다른 여자를 만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는 것인데 대체로 잘 되진 않고 있다 한다. 무엇보다 상대의 말에 무슨 반응을 해야 하는지, 이럴 땐 이런 식으로 해야지 하며 배였던 습관이나, 정확하게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전달되던 나의 의중이 전혀 통하지 않아서, 새로운 만남을 자꾸 실패하는 모양이다. 내게는 그것이 마치 말이 통하지 않는 만리타국에 홀로 떨어진 이방인처럼 보였다.


두 사람만이 통하는 언어에 익숙해져, 이제는 '우리 둘' 이후의 삶을 맞이해야 하는 것. 본질적으로 연애라는 것이 상대방을 이해하고, 결코 겹칠 수 없던 사람들이 함께 있는 법을 익혀나가며, 동시에 다른 누구도 공감 수 없는 공동의 공간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연인이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언어를 구사하는 유일무이한 두 사람인 셈이다.  


뉴욕에는 많은 사람만큼이나 많은 인종이 살고 있는데, 개중에는 아주 소수민족만이 쓰고 있는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가고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서 그 언어가 점차 사멸해가다 보면, 언젠가 그 언어를 아는 사람은 줄고 줄다 결국엔 하나 둘 정도밖에 남지 않게 된다고 한다. 물론 미국에서 살면서 나름대로 영어를 익혔으므로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겠지만, 언어라는 것에는 뉘앙스가 있고 말의 결이라는 것이 있어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아무리 말을 해봤자 의중을 손실 없이 전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확실히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언어는 그것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정서적 유대인 것이다. 다시 말해 언어를 공유하던 이가 사라져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삶의 고독 앞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무섭게 들릴 것 같아 말은 안 했습니다만.


대체로 사랑은 거기에 빠져 의식이 어딘지 모르는 곳을 날다가, 무얼 하는지 모르게 서로에게 익숙해진 뒤에는 어느새 꽤 많은 시간이 흘러 버린 것을 알게 된다. 아마도 J 씨는 8년간 누적된 계절의 냄새를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 계절마다 잊어야 할 기억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는 시도는 꽤 오랫동안 실패할 것 같다. (물론 이런 말도 하진 않았다) 그러나 J 씨는 8년간의 연애가 실패로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던 시절부터 만난 그들의 연애는, 실제론 다투고 일상적인 나날들이 많았더라 하더라도 서로에게 언제까지 신선하고 감동적인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알고 보면 인생에 이런 시기는 정말 짧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나면 쓸데없이 이것저것 재거나, 너무 생각이 많아져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언젠가 돌아볼 때 이미 까마득히 지나가고 언젠가는 영원히 잃어버리겠지만. 이런 기억을 확실히 간직한 사람은 남은 시간을 남들보다 조금 더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진 J 씨가 계절을 괴로워하고 있을 때, 나는 부디 그가 이 시간을 온전히 견뎌 내길 바랬다. 어쨌든 그런 시기를 지나버린 J 씨의 연애가 이전과 같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앞으로도 진지하게 임한다면 세상에 의미 없는 연애는 없지 않을까. 가련한 건 끝나버린 사랑이 아니라 둘만의 언어가 없었던 연애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을 채워주는 사람만으로 채운다면 결국엔 타인을 그저 소모하며 끝날뿐이다. 우리에게 없는 건 마음이지 시간이 아니다. J 씨가 강박적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하는 불안을 떨치고 온전한 자신이 된다면, 언젠가 다시 최선을 다한 이별이 와서 혼자 남아버린 언어의 구사자가 될지라도, 그런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의 고독은 그리 차갑지만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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