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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규 Feb 13. 2019

야밤의 공대생 만화

주말에 교보문고를 들락거리다가 책을 세권 샀다. 첫번째로 유시민의 표현의 기술. 제목 그대로 표현하는 기술을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단 "글"에 관한 글로서 유시민 선생님의 수필에 가까운 책이다. (아직 다 읽진 않았다) 두번째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군대에서 할일이 없어 읽었던 소설로서 야동을 볼 수 없던 그 시절에 유일한 위안이 되어 준 책이다. 몇 차례 다시 읽었으나 정작 소장본이 없어서 구입했다. 새로 나온 판본도 있지만 이것은 문학사상에서 나온 초기 번역본이 최고다. 와타나베, 우리 섹스 할까-어쩌구 하는 부분이 특히. (한정판으로 나온 것은 품절로 구입할 수 없었다. 혹시 갖고 있는 분은 연락 주세요, 따불낼게요ㅜㅜ) 세번째로 산 것이 야밤의 공대생 만화. 지금 쓰는 글은 사실 이 책의 추천평이다.


기본적으로 수학과 과학, 기술에 관한 이야기다. 보통 사람들의 삶과 만년은 떨어져있어 보이는 분야지만 듣다 보면 알 수 밖에 없다. 우리의 문명은 그들이 해낸 업적의 토대 위에 쌓여졌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좀처럼 편히 듣기가 쉽지 않다. 과학과 수학의 언어가 일상의 언어와는 다른 체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진지하게 수학은 제2외국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야공만은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주목한다. 주식으로 재산을 다 날린 뉴턴 얘기나, 궁극의 공대남 폴 디랙, 어그로꾼 라이프니츠 등등. 대체로 알아두면 쓸모없는 트리비아로 가득하다. 소재가 소재다 보니 이야길 하다보면 피할 수 없는 이론적인 부분은 우리에게 가까운 언어로 설명하려고 애쓴다. 비유와 예시를 통해 간단히 풀어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부분은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매 컷마다 가장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는 인터넷 언어, 예를 들면 짤방 패러디나 드립 등을 적절히 사용하려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결과적으로 아주 어려운 내용을 가장 가볍게 다루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이 책의 가벼움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분야를 철저하게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배려에 가깝다. 과학에 관심 없는 사람이 읽는 과학책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야밤의 공대생 만화는 지은이 맹기완이 서울대 커뮤니티 사이트인 스누라이프에 올렸던 만화다. 공대생이었지만 초등학교때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3만원에 타블렛 펜을 샀다가 쓸데가 없어서 만화라도 그려보자는 마음에 그리기 시작했다. 그냥 그렇게 그리기 시작한 만화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사람들이 좋아해주니 신나서 그리다가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애초에 이걸로 돈을 벌 생각도 아니었다. 책을 내기 전까진 실제로 그랬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걸 누군가가 좋아해줬으면 하는 마음. 읽다보면 그런 절실함이 전해진다. 만약 이번 여름 휴가에 가볍게 읽고 싶은 교양서를 하나만 추천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 책을 권하겠다. 이것은 누군가가 자신의 전공 분야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형태로 그려낸 작품이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그렇게 낼 수 있는 작품이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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