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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규 Feb 13. 2019

Ordinary Last Word

L씨는 한 때 나와 같이 일했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멀쩡한 일자리는 아니었기 때문에 깊은 관계를 맺지는 못했지만, 동년배인 우리는 각자가 오늘 겪은 일을 나누며 하루를 버티곤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일은 버틴다-는 표현이 적확하다) 일을 마치면 무엇보다 피곤함이 몰려왔으므로 그와 개인적인 자리를 가진 적이 한번도 없었다. 늘 언제 소주 한잔 해-라고 무심하게 인사한 뒤,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 일을 그만두었고 그와는 다시 보지 못했다. 가끔은 생각했다, 잘 지내고 있겠지. 얼마 전 심장마비로 요절했다는 부고를 듣기 전까진 전혀 소식을 알지 못했다.


가끔 마음속에 결코 죽지 않고 남는 말이 있다. 내용을 보면 대체로 그리 특별하지 않은 말들이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영영 떠난 친구가 했던 언제 소주 한잔해-라는 말이나. 군 전역한 뒤 다시 보지 못했던 이들의 나중에 꼭 보자-라는 말, 헤어진 연인이 일상적인 제안으로 나를 붙잡으려고 했던 필사적인 말 같은것. 내가 그 언젠가 밥먹고 가-라는 말을 뒤로 하고 돌아왔을 때, 나는 이후로 내게 그 말을 한 사람을 다시 보지 않았다. 살다보면 만날 수도 있지. 그러나 언젠가 거리에서 스쳐갈지라도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고 '잘 지내고 있구나' 생각한 뒤 각자의 길을 갈 것이다. 그래서 밥 먹고 가-라는 말은 내겐 일종의 유언처럼 남았다. 그 말을 들었을 땐 미처 알지 못했지만. 가끔은 후회한다. 우리는 그렇게 시시한 말로 마지막을 기억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대답도 하지 않고 돌아왔던 그날 조금만 화를 가라앉혔다면. 대부분의 마지막은 알지 못하는 새에 갑자기 찾아오기 때문에, 안녕-이라고 서로에게 작별을 고할 수 있는 순간은 알고보면 그렇게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나는 누군에게 말을 할 때 조금은 더 생각하고 입을 떼려고 노력한다. 남이 내게 하는 말도 비교적 세세하게 기억한다. 별 생각 없이 건넨 말이 그들에게 남은 나의 마지막 말이 될 수도 있다. 형태가 있는 것은 언젠가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라져 간 그들을 말로서 마음에 쌓아두고 지낸다. 꺼내볼 때마다 설레고, 아프고, 두렵고, 돌이킬 수 없는 아쉬운 말들을. 이제는 만나지 못하는 사라져간 이들의 마음에, 빼곡하게 남은 나의 서툰 유언을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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