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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규 Feb 14. 2019

남자 왁싱 체험기

K 씨는 최근 왁싱을 받았다고 한다. 여자들의 왁싱 체험기야 들은 바가 많지만, 남자들의 왁싱은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게 왜 그런가 하면 어디에 있는 모발이건 털이라는 것은 곧 남성 호르몬의 상징이기 때문이 아닐까. 남자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남자다움을 겉으로 드러내려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순수한 상태의 그것은 뭐랄까, 아직 남자로서 구실을 할 수 없던 코흘리개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여자가 실용적인 이유로 왁싱을 할 때 남자는 상징적인 이유로 하지 않는다. 남자는 그런 동물이다. 아무리 위생적이고 장점이 많다한들, 그것은 남자들의 남성성 집착에는 비할 바가 못 되는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남들 이야기를 재미있어 하지만, K 씨가 그런 습성을 극복하고 왁싱을 받았다는 이야기엔 꽤 흥미가 생겼다. 여기서부터가 좀 이상한데, K 씨는 섹스 중 상대로부터 입으로 받는 그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자 친구가 전혀 그것을 해주지 않아서, 한 번은 진지하게 자신은 그것을 좋아한다고 밝혔으나 그녀의 대답은 단호했다. 바로 "깨끗하게 정리하고 온다면 해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 신선한 요구에 K 씨는 왁서가 내 그것을 마음대로 만지고 닭처럼 털을 뽑아대도 괜찮겠냐-라고 물었으나 내가 면도기로 해주다가 네 고추를 베어버릴지도 모르니 전문가에게 해라-는 대답에 K 씨는 왁싱샵을 예약하고 말았다. 여자 친구에게 단지 그걸 받고 싶은 마음뿐이어서는 아니었다. 그래! 이것은 서로에게 맞춰 나가는 과정일 뿐이야. 그녀가 그걸 원한다면 내가 기꺼이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헌신의 의미라고. 아니 그냥 빨아달라고 안 하면 되잖아...

  

예약은 했으나, K 씨는 한참을 걱정했다. 여자가 뽑는 것도 그렇지만 남자가 들어오는 건 더 싫다. 섹스할 것도 아닌데 남이 내걸 주물러 대는 건 초등학생 때 무자비하게 고추를 잘라대던 사이코패스 의사의 포경 수술 이후론 처음이었다. 그는 아랫도리를 탈의한 채 닭처럼 누워 내가 자지 한번 빨아달라고 뭘 하고 있는 건가 그제야 고민했다. 이윽고 (그의 회상으로) 귀엽고 예쁜 왁서가 들어왔을 때, 만지지도 않았는데 발기해 버린 그는 정말 나가 죽고 싶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개구리 배를 가르는 사람처럼 그녀가 무심하게 왁스를 바르더니 털을 뽑아 재끼는 순간, 그는 자신의 굵고 튼실한 모근을 진심으로 저주했다. 너 옛날 롯데월드 괴담 알지. 자이로드롭에 머리카락 걸려서 얼굴 가죽이 벗겨졌다는 여자 얘기. 응, 알지. 그 여자는 죽기라도 했지 시발 난 죽을 수도 없어.


왁서는 능수능란하게 그를 유린했다. 그곳의 정리를 위해 핀셋을 썼을 땐, 좀 더 쉽게 제거하기 위해 일부러 손으로 주물러 더욱 그, 민망해서 쓸 수가 없네. 그런데 그 순간 K 씨는 의도치 않게 그걸 좀. 그러니까, 흘렸다고 한다. '어머, 다른 분들은 긴장해서 이렇게까진 안되는데 호호홓'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K 씨는 수치심에 울면서 아파서 눈물이 난 척했다. 그래도 왁서가 크기가 상당하세요-라고 말했다는 그를 보며 나는 두상이 예쁘세요-라고 말하는 헤어디자이너와 뭐가 다르냐고 말하려다 속으로 삼켰다. 지옥 같은 40분을 보내고 그는 10살 이후 처음으로 순수해진 자신의 국부를 보며, 전에 없던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그 길로 선물이 있다며 수줍게 여자 친구를 만났다. 이후의 얘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이걸 진짜 했냐고 왁싱한 시간만큼 구르며 놀리더니 보들보들하고 매끈해서 귀엽다-고 말했다 한다.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한 사람은 없다는 말로 그는 왁싱 체험기를 표현했다. 삭발을 하면 두피로 바람이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그 시원한 느낌을 안다면 사타구니를 통해 전해지는 정보량은 이전과 차원을 달리 한다며 K 씨는 내게 진지하게 왁싱을 추천했다. 아니 여태 이렇게 끔찍한 얘길 해놓고 뭔 소리야-고 생각했으나, 여기까지 들으니 호기심은 일어났다. 다만 K 씨의 눈에 얼핏 스쳐간 나만 좆될 순 없잖아-라는 기척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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