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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규 Feb 12. 2019

직업으로서의 기획자

NHN의 프로듀서인 사노 와타루씨는 상당한 베테랑으로 나는 그에게 많은 신세를 진 바가 있다. 일본에 출장 갔을 때 한국인인 나를 배려한다고 어마어마한 가격의 비빔밥을 먹이는 해괴한 센스를 비롯해 (일본인에게 일식으로 식사 대접을 하는거나 마찬가지다) 다소 특이한 구석은 있지만 지금도 기억이 날 만큼 좋은 사람이었다. 프로듀서의 이름이 매우 브랜드화 되어 있는 일본의 특성 상, 유저 친화적인 사노를 유저들도 모두 좋아했다. 덕분에 후임자인 쿠도 켄타는 꽤 고생을 해야 했지만.


사노씨는 유독 게임 대회를 개최하는 것을 좋아했다. 대회가 열리고 나면 매출과 지표는 로켓처럼 상승하기 마련이다. 나도 처음엔 사노씨가 단지 게임 흥행과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서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대회가 끝나고 같이 술을 마시던 자리에서 그는 그렇게 말했다.

"박상, 저는 SF의 첫 대회를 열던 때가 아직도 생각납니다. 이 게임 하나 때문에 모여서 울고 웃는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게임은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제겐 그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는 것이 전부입니다. 저는 그 기억 하나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사노씨가 딱히 나를 가르치려고 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쑥쓰럽게 말하던 그의 얼굴이, 개발자로서 내겐 일종의 원형으로 남아 있다.


게임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그저 그런걸 만들며 월급이나 받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고. 처음엔 분명 그런 마음이 있었을지 모른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한걸 사람들이 사랑해줬으면 좋겠다는 것. 그러나 직업으로서의 무엇이란, 그런 낭만적인 기분은 잠깐이고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 노동에 가깝다. 순수하다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단지 그것만으로는 넘어 설 수 없는 현실적인 순간들이 자꾸만 주저 앉게 만든다.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 있는가. 투자자도, 동료들도, 유저도, 나도 만족할 만한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정말로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무실에 앉아서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으면 자꾸만 그걸 잊게 된다.


왕복 9시간을 운전해서 G Star에 딱 4시간 있다가 돌아왔다. 학생이었던 2008년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딱히 신작 발표에 관심이 있던건 아니었다. 그냥 게임을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들 얼굴을 보고 싶었다. 성공이란 살아가며 매번 갱신 되는 무엇인가다. 나는 언제나 내가 만든 걸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가끔 좋았던 순간이 있지만, 아직은 정말로 성공한 적이 없다. 갈 길이 멀었다. 게임은 산업이고 내가 만드는건 결국엔 누군가의 돈벌이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떤가. 거기서 즐거워 하던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려고 유심히 보다가 돌아왔다. 사무실에 돌아가서 내내 그걸 기억하다 보면 언젠가 도달할 수 있을테니까. 오늘은 유난히 사노씨가 보고 싶다.


(2016.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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