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둥둥 Aug 07. 2023

엄마가 있지만 엄마가 없습니다

아플 때 보이는 가족애



이틀 전부터 갑자기 편도선이 붓고 어지럽기 시작했다. 친한 부부가 사는 아기가 있는 집에 놀러 갔었을 때부터 증상이 시작됐다. 하루종일 집 안에서 에어컨을 틀어놔서 냉방병이 생긴 줄 알았다. 놀다가 몸이 안 좋아지는 느낌이 들어 아기가 낮잠을 잘 즈음 부부도 잠이 들어 나도 다른 방에서 낮잠을 자고 타이레놀을 먹었다. 약을 먹고 나니 좀 나아져서 함께 밖에서 밥을 먹고 집에 들어왔다.


집에 도착해서는 씻고 일찍 잠들었다. 어제 아침에 일어나니 편도선이 더 부어 말하기가 힘들어졌고 온몸에서 식은땀이 났다. 설마 코로나는 아니겠지 싶어 엄마한테 자가키트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누워서 자가키트를 하고 보니 희미하지만 두 줄이었다. 이번 주에 출근해서 해야 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어제 다녀온 가족들 특히 아기가 아프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


우선 병원에 가서 정확히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갔다. 우리 동네에서 일요일에 문을 연 유일한 병원이라 사람이 많았다.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 검사를 대기하는 좁은 공간에 앉아 눈을 감고 비몽사몽으로 순서를 기다렸다. 오한이 오고 속이 울렁거렸다.


내 차례가 되어 입과 코를 검사했고 결과는 양성이었다. 회사에 알리니 5일간 격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부부에게 전화를 했다. 병원에 와서 신속항원검사 결과 확진이라 약처방을 받았다고, 괜히 가서 언니와 형부, 아기가 아프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언니는 미안할 거 없다고 집 가서 약 먹고 푹 쉬라고 말해주었다.


집에 와서 간단하게 밥을 먹고 약을 먹은 뒤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했다.


“엄마 죽좀 사다 주세요.”


답장이 없었다. 나이를 먹었지만 그럼에도 같이 사는 딸이 아픈데 거들떠도 보지 않는 엄마에게 서운함이 밀려왔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엄마에게 전화해 언제 오는지 묻자 ’이따 간다.’는 말뿐이었다. 나는 서운함에 죽은 사 올 필요 없고 내가 알아서 챙겨 먹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무심한 엄마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아프니까 더 서러워졌다.


이런 일로 속상해하는 것도 웃긴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찰나에 신기하게 오빠에게 연락이 왔다. 집에서 쉬고 있는지 묻길래 누워있다고 말하니 귀신같이 아픈 걸 알아챘다. 목소리가 왜 그러냐,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나는 코로나에 걸렸다고 말했다. 오빠는 새언니랑 같이 밥을 먹으러 나왔고 내 생각이 나서 연락했다고 했다. 내심 오빠에게 고마워졌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죽 기프티콘을 보내줬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온몸에 땀이 나서 입고 있던 옷이 축축했다. 열이 좀 내린 것 같았고 컨디션도 나아졌다.


저녁이 되고 엄마가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나를 쳐다도 보지 않고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술을 먹었는지 방에 불을 켠 채로 잠에 들더라. 친구분들과 즐겁게 놀고 온 것 같았다. 몇 달 전 엄마는 술을 잔뜩 먹고 넘어져 앞니 5갠가를 다 빼고 치료받아야 했던 일이 있었다. 그 이후로 술을 먹지 말라고 계속 말했지만 금주는 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있지만 엄마가 없는 것 같았다.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엄마에 대한 애정이 커지지 않는 걸 보면 앞으로도 큰 변화는 없을 듯싶다. 얼마나 고생하며 살아왔는지 아니까, 충분히 지금 삶을 즐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표현의 방식이나 행동이 무심할 때가 많아서 상처를 받게 되는 건 사실이다.


오늘 오전에 엄마에게 왜 나한테 괜찮냐고 안 물어봤는지 물었다. 하지만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아빠가 살아 있었다면 내가 아플 때 괜찮은지 물어봐주고 몸조리 잘하라고 말해줬을 것이었다. 아빠 생각을 하니 울컥했다.


가족을 대하는 자세, 어떻게 해야 맞는 걸까? 난 이제 엄마에게 술을 먹지 말라는 잔소리도 하고 싶지 않고, 서운한 마음도 표현하고 싶지 않다.


나를 지치게 하는 사람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구나. 어쩐지 씁쓸한 하루다.

작가의 이전글 관계에 있어 솔직하지 못한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