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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둥둥 Nov 30. 2023

울고 웃으며 헤어졌습니다

결혼을 원하는 여자, 결혼을 원하지 않는 남자


장거리 연애중이던 우리는 며칠 전에 헤어졌다. 어쩌면 이 글을 볼지도 모르겠다. 봐도 상관없다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안 봤으면 좋겠다. 그러는 편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


헤어지는 날 전화를 길게 했다. 지난 시간들이 소중하고 하나하나 아쉬워서 쉽게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다. 한 달 전쯤, 내가 먼저 헤어짐을 말했었다. 부산에 내려가서 같이 동거를 하자는 것이나, 미래를 함께 그리는 것에 대해 남자친구는 아직 생각이 없었고, 동의하지 않았기에 나로서는 남자친구에게 나라는 존재가 그 정도의 가치밖에 안 되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과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나와의 미래를 그리지 않는 사람과 계속 잘 지낼 자신이 없어 헤어짐을 고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웠을 텐데 나는 내 마음만 생각했던 게 없지 않아 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결혼의 시기보다 그 사람과의 결혼을 원했던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그냥 물 흐르는 대로 지내는 게 어려웠던 것 같다.


그 당시 남자친구는 내가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락을 해왔다. 나랑 결혼한다면 즐거울 것 같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결혼을 고려하지 않던 그가 갑자기 결혼의 시기를  대략적으로 정하기까지 해서 어안이 벙벙했다. 분명 내 말을 수용해 주었는데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말을 하는 건지 사실 좀 모르겠었다. 그래도 나에게 맞춰주려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을 해주었다는 게 참 고마웠다. 아이를 낳으면 어린이집은 어떤 데를 보내고 싶은지, 어머니가 아이를 좋아해서 돌봐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등의 말을 해서 정말 '이 사람이 나랑의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구나' 싶었다.


서울 부산을 오가며 잘 지내다가 뭔가 직감적으로 그가 나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서운한 게 있는지 묻자 우리에 대해 할 말이 있다고 해 전화를 했다.  내가 헤어지자고 했던 날 이후로 많이 고민해 보니 결혼에 대해 말했던 건 정말 본인이 원해서 말한 게 아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그만하기로 했다.


나는 그와 헤어지기보다는 결혼에 대해 생각하던 걸 잠시 맘추고, 조금 더 그를 기다리며 만나고 싶었지만 애인은 반대의 의견이었다. 이미 서로가 말하고 싶은 게 다르고, 그걸 억누르면서 만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것도 맞다. 이미 서로가 원하는 게 다르다는 걸 알았는데 서로의 마음을 그냥 덮어두고 전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건 어려운 일일 거다. 계속 만난다고 해도 같은 이유로 다투거나 헤어질 수 있는 확률이 분명히 있으니 말이다. 만약 헤어지지 않았더라도 나는 마음 한편에 계속해서 결혼에 대한 기대를 했을지도 모른다.


시간을 돌린다면 헤어짐을 고하는 게 아니라 더 자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조율해나갔을 텐데 하고 후회도 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안정감을 갖길 원하고, 그는 자유나 커리어적(?)인 게 더 중요했던 것 같다. 그 간극은 쉽게 매울 수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누구의 말이 맞고 틀린 건 없다. 그저 서로의 입장과 생각이 다른 것일 뿐. 그래 우린 서로에게 마음이 식어서 헤어진게 아니었다. 우리의 마지막은 서로를 탓하지 않고 지난 추억과 시간을 회상하며 울고 웃으며 그렇게 헤어졌다.


그에게 ‘훗날 삼십대 후반이 됐을 때 옆에 좋은 사람이 없다면’ 이라는 말로 운을 띄워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을 전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로에게 더 맞는 짝이 나타나지 않을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일!


아무쪼록 추운 겨울이 왔고, 이별했지만 혼자서도 잘 놀고, 잘 견딜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었으니까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것 같다. 친한 친구 한 명을 잃은 것처럼 슬펐지만 일상이 바쁘니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 사는 인생이 어찌 다 우리 마음처럼 될까. 이제는 나에게 더 집중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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