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두 팔 벌려 안아주기
최근에 야근하다 갑자기 위경련이 와서 급하게 퇴근하고 응급실에 갔다. 명치 바로 아래 가운데 배를 누가 쥐어짜는 것처럼 통증이 생겼다. 제대로 걸을 수 없이 아팠다. 정신이 혼미하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구나 싶었다. 위경련은 처음이었다. 최근에는 일 하면서 크게 스트레스받는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알게 모르게 받은 모양이다. 이별 후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그게 영향을 꽤 미친 것 같다.
응급실에서 수액과 주사를 맞으니 한결 나았다. 의사는 맹장이 터지는 걸 수 도 있으니 CT를 찍어볼 건지 물어봤으나 아닌 것 같아서 그냥 퇴원했다.
집에 돌아와 다시 일상을 보냈다. 뭘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위경련이 있었던 다음날부터 바로 역류성식도염 증상이 생겨버렸다. 위가 약해진 게 확실해졌다. 4월에도 입사하자마자 2~3주간 역류성식도염으로 고생했었는데 다시 도졌다니..! 마음이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렇게 위가 반응한다.
몸이 안 좋아도 운동을 가야 활력이 생길 것 같아서 피트니스센터에 꾸준히 갔다. 그런데 웬걸 컨디션이 안 좋아서 더 할 수 있는 것도 못했다. 피티 선생님은 여태 같이 운동한 날 중에 가장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했다. 덤덤하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이렇게 반응하는 걸 보니 역시 헤어짐이 큰 충격인 것 같다.
사람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내면 즐겁고 또 힘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혼자가 되면 슬퍼질 때도 있어서 그러한 마음들을 TV 예능을 돌려보며 애써 감춘다. 친한 친구에게도 내 감정을 크게 티 내지 않았다. 내 감정을 더 들여다보고 충분히 어루만져주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자꾸 몸이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는 게 아닐까.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몇 달간 슬픔과 원망 그리고 그리움 등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였지만 외면했었다. 외면한 감정들은 절대 멀리 사라지지 않았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진정한 애도를 하게 되었고 지금은 아버지에 대한 힘든 마음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그렇게 겪어놓고도 다시 내 마음을 외면하고 있다니. 이별 후에는 반드시 슬픔을 충분히 느끼고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는 걸 더 절실히 깨달았다. 더 이상 마음속에 고여있는 슬픔이 남지 않을 때까지 느끼고 토닥여야 잘 지낼 수 있다.
몸에 이상신호가 오기 전에 지인을 만났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Y는 내 얼굴이 밝아졌다고 했다. Y가 나를 처음 만났던 스무 살 초반에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생각이 많고 약간 어둡고 어딘가 불안한 모습이 있었는데, 지금은 인상이 너무 좋아지고 생기가 있다고 했다. 이제는 정말 어른이 된 것 같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 이십 대 후반부터는 외로웠던 어린 시절의 ‘나’를 상담을 통해 들여다봤고, 안정감 있는 연애를 하면서 내면이 많이 밝아지고 안정감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더 이상 이십 대 때처럼 외로워서 울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정말 마음을 많이 주고, 결혼을 생각할 만큼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졌다는 사실이 마음 아파 운다. 그뿐이다.
절친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그 사람도 너한테 진심이었을 거야. 그 사람 마음까지 부정하지는 마. 그리고 그 사람이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한 것처럼 너도 너 생각이 맞았던 거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야. 절대 너 자신을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별을 두 팔 벌려 꽉 안아주자. 마음껏 슬퍼하면 다시 일어날 힘을 얻을 게 분명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