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투자하기, 지인들 밥 사주기, 가족 챙기기
어느덧 3년 가까이 만난 사람과 헤어진지 한 달이 흘렀다.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던 디데이 어플에서 3년이 되는 날이라고 알람이 울렸다. 지우지 않으면 나중에 시간이 흘러 또 알람이 울리게 되니 어플을 삭제했다.
그동안 12월엔 위경련과 역류성식도염으로 한동안 고생을 했다. 2주가 넘게 아팠는데 위장약과 '자낙스정'이라는 신경안정제(불안, 우울, 긴장, 수면장애 등의 증상완화)를 극소량 처방받았다. 효과가 있는지 지금은 한결 낫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이나, 역류성식도염 등에도 사용되는 약이라고 하니 확실히 스트레스와 긴장이 가라앉은 것 같다. 먹고 싶은 기름진 음식이나 밀가루 음식도 정말 거의 먹지 않았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12월은 한 해 사업을 마무리하는 시즌이기도 해서 야근이 잦아 한동안 글 쓸 엄두를 못 냈다. 그래도 종종 감사일기나 짧은 일기를 적곤 했는데 문득 오늘 퇴근길에 헤어진 지 한 달인 지금 시점의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됐다. 그런 생각에 잠기다 보니 나는 생각보다 별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별 일이 없으면 행복한 것’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동안 상황적으로 여유가 없어 소홀했던 나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에 돈을 너무 아끼지 않게 됐고,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었으며 가족들을 챙기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한 번 시작해 보자.
나에게 투자하기
나에게 투자하는 것은 가장 아깝지 않은 소비라고 생각한다. 옷을 살 때 비슷한 디자인이면 할인하는 상품, 더 저렴한 옷을 예산에 맞춰서 사던 습관을 버리기로 했다. 조금 값이 나가도 나와 잘 어울리고 단정하며 예쁜 옷을 산다. 대학생 때는 짠테크에 매료되어서 가계부를 쓰며 0원 지출인 날이 있으면 좋아하고 그랬다. 나를 꾸미지 않았다는 말이다. 물론 생활비가 빠듯한 학생 신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취업후 첫 3개월 정도는 옷사고 뭐 하고 하면 월급이 사라진다’는 말은 나에겐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 입사 후에도 옷을 많이 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옷은 합리적인 가격 선에서만 사야 한다는 마음을 버리니 정말 마음에 드는 니트와 바지를 살 수 있었다. 앞으로 질 좋고 깔끔한 옷을 좀 더 사고, 해지고 오래된 옷은 정리할 생각이다. 옷장에 고등학때 입었던 니트도 있고, 무릎 나온 청바지도 있다. 굳게 마음먹고 비워내야지.
손톱 정리와 영양케어도 받아봤다. 비싼 금액도 아닌(15,000원~25,000원대 선인데 내가 간 곳은 15,000원이었다)데 손톱에 돈 쓰는 건 아깝다고 생각했던 내가 관리를 받고 왔다. 손톱과 큐티클이 너무 깔끔하게 정리됐다. 네일아트는 거슬릴 것 같고 손톱도 상하니까 굳이 받지 않지만 정리만 받아도 확실히 손이 깔끔해진다. 너무 만족스럽다.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했을까? 손톱이 못 생겼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못난 내 손톱도 관리를 하면 예뻐지는 거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샴푸도 평소에 쓰던 것보다 훨씬 값이 나가는 괜찮은 샴푸를 사서 사용하고 있다. 월급에서 50% 이상을 저축하고 남는 금액 선에서 적정한 소비를 하는 거니 죄책감도 없고, 그동안 나를 많이 가꾸지 않고 살았으니 더 가꾸고 나다운 분위기로 꾸미고 살고 싶다.
내적인 것을 중요시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내면을 어느 정도 가꿨다면 외적인 부분도 가꾸는 편이 나 자신을 한층 더 자신감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주머니 사정이 허락한다면, 이것저것 나의 취향과 분위기에 맞는 의상을 골라 입고, 피부나 머릿결을 관리하고, 운동을 하는 등 자신을 가꾸는 것만큼 금방 눈으로 보이는 성과도 없다. 이렇게 큰돈 들이지 않고 나를 가꾸는 일, 즐겁다!
사람들 밥 사주기
이별 후 후회하지 않는 소비 두 번째는 사람들을 만나 밥을 사주거나 커피를 사주는 일이다. 연애를 할 때는 주말마다, 장거리를 시작하고 난 뒤부터는 2~3주에 한 번씩 데이트를 했다. 자연스럽게 남자친구와 보내는 시간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다 보니 나를 부르는 약속에 몇 번씩은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건 많은 커플들이 감내해야 할 수밖에 없는 일이고, 나도 데이트를 했던 순간을 절대 후회하진 않는다. 다만 이제는 고정된 데이트가 없으니 만나자는 약속들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있고, 먼저 안부를 묻고 만남을 주선하기도 한다.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학창 시절 친구, 여행에서 만난 언니오빠들, 대학 가서 만난 선후배들, 직장에서 친해진 동료들 등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걸러져 남은 소중한 인연들은 웬만하면 연을 이어가고 싶다. 그동안 조금은 소홀했던 사람들에게 나의 시간과 돈을 쓰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면, 이제는 부담되지 않는 적당한 선에서 챙겨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종종 삶의 큰 울림을 주기도 하고 큰 기쁨이 되는 법이니까.
가족 챙기기
마지막으로는 가족들을 좀 더 챙기게 됐다는 점이다. 연애 중이었다면 '남자친구에게 줄 크리스마스선물은 뭘 사야 할까', '남자친구 생일도 곧이네, 취업 후 첫 생일 맞이니까 좋은 거 해주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등 포커스가 남자친구에게 맞춰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오랜만에 엄마랑 저녁에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친오빠 생일을 앞두고 처음으로 값나가는 선물을 준비했다. 크리스마스 느낌으로 직접 포장도 할 예정이다.
가족들만큼 언제나 나를 응원해주고, 한결같이 그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고마움을 더 표현해주고 싶다. 쉼 없는 연애에 휴식기인 지금, 나와 주변 사람, 가족을 돌볼 여유를 가지게 되어 참 좋다.
모두 Merry christm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