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둥둥 May 20. 2024

음악 취향은 달라도 가치관은 같았으면


두 달 전 아주 짧게 만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내 친한 친구와 절친한 사이라 동갑이었다. 오늘 갑자기 샤워를 하다 불현듯 그가 나에게 했던 말에 상처를 받았던 게 떠올랐다.


그는 솔직하고 꾸밈없는 사람이었다. 좋은 말도 많이 해주었지만 너무 솔직한 게 사실 한 번씩 거슬릴 때가 있었다. 한 번은 내 손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손이 작다는 말에 덧붙여 말했다.


“되게 고생한 손 같다.”


그 말을 듣고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내 손이 주름이 조금 많고 짤막해서 못생긴 건 알고 있는데 엄청 거칠지는 않다. 손에 땀이 별로 안 나서 건조하긴 하지만 고생한 손 같다는 말을 처음 들어봐서 네이버에 검색을 했다.


'고생한 손'이라고 검색을 하니 고생한 손과 고생 안 한 손을 만져보면 구분이 된다는 말이 눈에 띄었다.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고생한 건 정말 손에서 다 티가 난다거나 손이 일생과 삶을 보여주는 거라 속일 수가 없다거나 하는 글이었다. 이십 대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바리스타로 일하고 호주에서는 주방 보조로, 하우스키퍼로, 공장 노동자로, 오피스 클리너로 온갖 일을 다 했었다. 그 후 이십 대 중반 이후부터는 고생은 거의 안 하고 공부하면서 대학도서관이나 기숙사에서 한가롭게 일을 했었다. 오래전에 고생했던 게 내 손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던 걸까?


우리 엄마는 식당일을 오래 하셔서 손이 울퉁불퉁하고 관절염이 있어 손가락이 삐뚤삐뚤하다. 우리 엄마 손가락을 보아도 그 말이 생각나고, 오빠 다리에 긁힌 상처를 봐도 그 말이 생각났다. 온갖 고생 다 하며 살아온 우리 가족들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너무나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고생한 손 같다."는 그 한 마디가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의 가치를 깡그리 무시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그러다 그가 차로 나를 집에 데려다주던 날 또 한 번 상처받은 일이 생겼다. 우리 집은 구석지고 한적한 곳에 있다. 임대아파트로 가장 높은 층은 15층이고 낡았지만 최근에 새로 페인트 칠을 해서 외관은 나름 깨끗해졌다. 그와 집 앞에 다다랐을 때 뭔가 부끄러웠다. 서울 도심에 사는 그에게 내가 사는 동네, 내가 사는 아파트가 너무 초라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말 걱정대로 그는 내게 말했다.


"옛날 아파트 같다."


말을 잘못 내뱉었다고 생각했는지 어쩐 지는 모르지만 그는 그 말에 이어 "내가 전에 살던 옛날 아파트랑 비슷해."라고 말을 이었다. 그러냐고 말하고 그냥 넘어가긴 했지만 가끔씩 퇴근길에 집 앞에 다다를 때 그 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이렇게 글을 적다 보니 또 하나가 생각났는데, 내가 사는 곳(경기도 OO시)에서 데이트를 할 때 그가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강 이런 뉘앙스였다.


"OO에는 노숙자가 원래 이렇게 많아?"


역 근처에 있는 노숙인들을 보고 내뱉은 말이었다. 나는 노숙인을 보면 '빅이슈' 잡지 같이 선한 영향력을 선사해 노숙인들이 직업을 찾고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부 차원이든 민간에서든 더 많이 만들어지면 참 좋겠다거나, 혹은 안타깝다고만 생각하고 끝내는데, 그는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것 같았다. 노숙인들은 서울역에 훨씬 많다.


그와 만나면서, 작년에 헤어진 (3년 안 되는 시간 사귄)사람에게서는 거의 느껴본 적 없는 열등감을 나도 모르는 사이 가졌었던 것 같다. 그가 해외에서 오래 유학생활을 했고 대기업에 다니며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이라 열등감을 가졌던 게 아니라(그런 조건 때문에 열등감이 조금은 있었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나에게 열등감을 일으킬만한 말을 내뱉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와 아주 짧게 만나고 헤어짐을 생각한 건 술문제나 서로의 결이 안 맞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결이 안 맞는다는 것의 의미를 지금에서야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서로 대화할 때 작은 부분들이 거슬리거나 껄끄러운 때가 있었는데, 삶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가치관이 하나하나 모여 나에게 데이터로 쌓였고 그 결과 그와 나는 '결이 맞지 않는 사이'라는 결론이 났던 것이다.




나에게만 다정한 사람이 아니라 약자에게 다정한 사람이 좋고

새롭고 현대적인 것뿐만 아니라 해지고 오래된 것의 멋과 깊이를 아는 사람이 좋으며

박학다식해서 모르는 게 없는 사람보다 아는 것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음악, 음식 취향은 다르더라도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법이다. 그는 그와 결이 맞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고, 나는 나와 맞는 사람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일생에 몇 번 일어나기 어려운 기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연재는 매주 월요일에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제 글을 찾아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분들의 댓글과 공감은 제가 글을 쓰는 큰 원동력이 됩니다 :)




이전 12화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는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