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엔 근로자의 날이라 쉬었다. 전날 야근을 하고 집에 가서 먹다 남은 치킨을 먹고 늦은 밤 산책을 했다. 저녁 9시 반에 치킨을 먹었으니 산책을 하지 않으면 배가 더부룩할 게 뻔했다. 간단히 산책을 하고 돌아와 씻고 누워 책을 읽었다. 비록 누워있지만 인스타그램을 보는 대신 종이책을 읽는 내가 대견했다. 조금만 읽다 12시 반엔 잘 생각이었다. 그런데 웬걸 <기대어 버티기>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다 잠이 달아났다. 그대로 휴대폰을 들고 유튜브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요즘 뉴진스 걸그룹 이야기가 떠들썩해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뮤직비디오, 데뷔무대까지 섭렵해 버렸다. 시간을 보니 새벽 3시가 넘었다. 그렇게 새벽 내내 유튜브로 시간을 때운 스스로에게 놀랐다. 이 시간까지 뭐 하고 있는 거야 김둥둥. 적당히를 모르고 내일 쉰다고 이러기야? 이러다가는 동이 트겠다 싶어 곧바로 잠을 청했다.
눈을 뜨니 아침 7시 반이었다. 엄마가 출근준비하는 소리에 자연스럽게 깼다. 새벽에 잠이 들어 늦잠을 잘 법도 한데 깨고 나니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또 휴대폰을 들고 누워 영상을 봤다. 좀만 더 쉬다가 오전에 운동을 갔다가 카페에 가서 경매 관련 책을 마저 읽을 생각이었다. 꿀 같은 근로자의 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계획이 틀어지는 일이 생겼다.
주말에 오빠에게 밥을 같이 먹을 건지 카톡을 보내다가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가 아프다는 걸 알게 됐다. 요즘 뉴스에도 나오는 고양이 사료 문제를 아이들도 겪고 있는 것이었다. 마음이 안 좋았다. 하늘나라로 가는 아이들도 많다고 해서 걱정되는 마음에 씻고 바로 오빠집으로 향했다.
애들이 괜찮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안고 다시 집에 돌아왔다. 잠을 잘 못 자기도 했고 오빠 집까지 왕복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왔다 갔다 해서 피곤했다. 오후 5시부터 30분만 자고 운동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알람을 맞추고 금방 잠에 들었고 눈을 떠보니 뭔가 이상했다. 도대체 얼마나 잔 거지? 저녁 9시였다. 알람을 끈 기억도, 알람 소리를 들은 기억도 없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수면제를 먹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깊이 잠을 잤다가 깼던 것이다.
운동도 못 갔고, 책도 못 읽었는데 하루가 거의 다 지난 상태로 눈을 뜨니 억울했다. 황금 같은 휴무를 날린 기분이었다. 어젯밤에 잠만 빨리 잤어도 다 했을 일인데 하며 후회가 밀려왔다. 나 자신이 너무 게으르게 느껴졌고 별로라고 느껴졌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 죄책감을 느끼거나 스스로를 하찮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뭔가를 열심히 하거나 휴일을 생산성 있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말이다.
하루쯤 그러면 좀 어떤가? 좀 게으르면 어떤가? 일과 사람에 치인 고생한 나에게 너무 쉼의 시간을 주지 않고 다그치기만 하면 몸도 마음도 아프게 된다. 나라도, 나만은 나를 이해하고 잘 품어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나 자신을 잘 돌보고 사랑하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아주 사소한 일상을 어루만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때 밥을 챙겨 먹는 일. 어떤 종류라도 좋으니 꾸준히 운동하는 일. 좋아하는 것을 일상에 껴넣는 일, 자기혐오에 빠지는 날 나 자신을 헐뜯거나 채찍질하지 않고 보듬어주는 일. 산책을 하거나 일기를 쓰며 엉겨있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일. 아무 소득도 없는 날 축 늘어져도 나를 미워하지 않는 일. 그런 작은 실천이 매일매일 모이면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나라는 사람은 견고해진다.
언제부터인가 열심히 사는 것도 남들과 비교하고 살고 있는 내가 안쓰러워 이제는 가끔씩 게으른 내 모습도 사랑하려 한다. 나의 헝클어진 모습을 사랑하지 않고서 남을 사랑할 수는 없다.
*연재는 매주 월요일에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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