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엔 서울에서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탔다. 용산까지 가야 해서 지하철에서 한 시간 가량을 책임져줄 에어팟을 귀에 꽂고 요즘 푹 빠진 '거니'라는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휴대폰 갤리러를 들어가 나에게 가장 잘 어울렸던 머리 스타일이 뭐였을까 궁금해 내 얼굴이 나온 사진들을 살펴봤다. (최근 머리를 단발로 잘랐는데 그전엔 히피펌을 도전했던 터라 요즘 모습이 마음에 썩 들지 않아서 나중에 어떤 머리를 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러다 작년에 머리가 길었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작년 겨울에 헤어진 사람과의 추억이 아직 갤러리에 담겨있다. 지워야 하는 건 아는데 아직 지울 용기가 나지 않는 건지, 귀찮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두고 있다. 추억들이기도 하고 나의 예뻤던 20대 후반의 모습도 많이 담겨 있기 때문에 흔적없이 삭제해 버릴 수는 없었다.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고였다. 지하철엔 사람이 많았는데, 맞은편에 있는 사람들이 혹여나 볼까 봐 천장을 보고 눈물을 삼켰다. 마법의 날이 다가오면 감정이 좀 올라올 때가 있는데 그래서 더 그랬던 것 같긴 하지만 정말 난데없이 사진을 보는데 눈물이 나는 나 자신에게 놀랐다.
왜 눈물이 나지?
생각에 잠겼다. 좋은 추억이 많았지만 헤어지기 전에 만난 데이트 장소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나는 활짝 웃고 있었고, 그는 약간의 미소만 띠고 있었다. 둘 다 여행을 좋아해서 부산이나 서울, 제주 이곳저곳을 정말 많이 돌아다녔었다. 난 사진 찍기 귀찮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는 항상 나를 찍어주고 셀카로도 함께 사진을 찍었었다. 언제나 활짝 웃으며 나와 사진을 찍던 모습이 헤어지기 전에는 없었다. 그 표정에서 많은 것들이 느껴져 눈물이 고였던 거였다.
‘이제는 놓아줄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그와 헤어지고 잠시 사귄 친구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그 친구는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 그 친구와 헤어지고 오히려 3년 가까이 만난 그 사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별한지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적어도 그를 그리워하지는 않지만 여태까지의 내 행적들을 보면 완전히 머릿속 마음속에서 그를 지워 버리지는 못 했던 것 같다.
잘 지내고 있을까 궁금하고, 우연히라도 마주치거나 어딘가에서 만나게 되면 반갑게 맞이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조차도 의식적으로라도 멈춰보려 한다. 충분히 마음속에서 그를 떠나보낼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거였고 나는 그 시간을 잘 보냈다. 스스로 초라해지지 않도록 일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꾸준히 했으며 새로운 도전을 하며 나를 가꿨다. 어느새 내 삶 속에 루틴이 생겼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미움도 그리움도 남아있지 않도록 매우 열심히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있다.
잊는다는 건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도, 미련가지는 마음도, 그리워하는 마음도 사라지는 그런 것이다.
그의 행복을 빌어주다가 어딘가에서 서로의 소식을 들으면 축하 연락을 해줄 수 있는 그런 멋진 사람이 되어야지. 이정도면 잊어가는 과정의 중간 터널은 지나온 셈이다. 바깥 빛이 보이는 터널 밖으로 나갈 때까지 조금만 더 달려 가보기로 한다.
*연재는 매주 월요일에 하고 있습니다. 이번 화는 부득이하게 화요일에 업로드 하였습니다. (˃̣̣̣̣︿˂̣̣̣̣ )
오늘도 제 글을 찾아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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