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소중히 하는 사람
이번은 뭔가 기대되는 상담시간이었다. 저번 주에 일정이 있어 상담을 건너뛰고 2주 만에 만나는 선생님 얼굴이 반가웠다. 저번 시간에 했던 게임(?)을 계속 이어갔다. 3x3 빙고 칸에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아무거나 적어 그 키워드를 적은 이유를 말했다. 저번 시간엔 웃음과 눈물에 대해 깊이 이야기했었고 이번엔 글쓰기, 여행, 사진에 대해 이야기했다.
키워드 '글쓰기'
어렸을 때부터 일기 쓰는 것을 좋아했다. 의식의 흐름대로 일기를 적다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여행을 다니면서부터 바뀌었다. sns를 활발하게 이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사진에 짤막한 글을 적어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을 즐겨했다. 사람들의 공감을 받는 것이 좋았다.
"나는 네 사진이 제일 좋더라.”
이런 댓글을 받거나 내 글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뿌듯함에 가슴이 벅찬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글 쓰는 일이 더 좋아졌다. 그러다 인스타그램과 브런치, 블로그 활용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는 짤막한 글과 사진을, 블로그에는 대외활동이나 잡다구리 한 것들을, 브런치에는 조금 더 깊은 이야기들을 적었다. 주로 어떻게 글을 썼는지 물어보는 선생님에게 어렸을 땐 일기를, 지금은 글쓰기를 배워본 적은 없지만 브런치에 글을 적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글쓰기를 하면 어떤지 물어보셨다. 생각해보니 글을 쓰면 감정이 정리되고 해소되는 느낌이 많이 든다고 했다.
"글쓰기는 상담에서도 쓰일 만큼 아주 좋은 자기 치유 방법이고, 배우지 않은 것을 꾸준히 하는 것은 능력이에요."
선생님은 글쓰기가 자기 치유방법으로 아주 좋다고 했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고 자주 쓰려고 한다니까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것을 꾸준히 하는 것은 능력이라며 칭찬해주셨다. 앞으로도 계속 성실하고 꾸준하게 적어서 정말 능력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키워드 '여행'
여행을 언제부터 좋아했느냐는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스물한 살 이후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가면서부터 여행을 정말 좋아하게 된 것 같다고 답했다. 가장 좋았거나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있는지도 물어보셨다. 가장 좋았던 여행지를 고르는 일은 고역이지만 꼭 꼽자면 이집트와 인도다. 이집트는 다합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 때문에 행복해서 좋았다고 답했다. 인도는 색다른 풍경과 사람들, 바라나시에서의 경험 등으로 인해 나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어서 좋았다고 했다. 언제나 'No Problem'의 자세를 가진 인도인들을 접하면서 과거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길렀던 것 같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 이야기 말고도 외로움을 극복하려고 혼자 여행을 떠났었다는 사실도 말했다. 물론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도, 불행한 현실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도 여행을 떠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스스로 단단해져 보겠다는 마음 가짐이 그득했다. 하지만 정작 유럽을 혼자 다녀보니 정말 외로움이 많이 밀려왔다. 한국인들을 만났던 이집트 여행부터는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 인연을 만들어 나갔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진주 씨 얘기를 들으니까 인생에 있어서 자기 삶에 의미부여를 어떻게 하는지가 정말 중요하다는 게 떠올라요. 그리고 진주 씨가 성장하면서 삶의 의미나 가치를 찾기를 원했던 것 같아요. 성숙된 기회나 감정을 경험하는 게 한국에서 제한적이어서 어려웠을 텐데 여행이 그것들을 할 수 있게 해 준 거죠. 여행이 진주 씨를 키운 것 같다고 느껴져요."
그 말을 들으니 지난 여행이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내 인생의 가치를 찾아 나섰던 여행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긍정적인 마음가짐이나 성숙한 감정과 지혜를 가질 수 있었던 건 여행으로부터, 곧 사람으로부터였다.
"여행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데 진주 씨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사람이네요."
마지막에 선생님이 한 말이다.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사람이라니. 무슨 뜻인가 아리송했다. 다음 키워드에서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키워드 : 사진
사진을 키워드로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진 찍는 게 좋았다. 기껏해야 오래된 미러리스 카메라와 필름 카메라 그리고 휴대폰으로 찍기는 하지만 말이다. 선생님은 주로 어떤 사진을 찍느냐고 물어보았다.
"저는 주로 사람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고양이, 자연을 찍는 걸 좋아해요."
선생님은 뒷모습을 찍는 걸 좋아하는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
"앞모습은 뭐랄까 조금은 인위적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앞모습이 좋은 것도 많지만, 여행 다니면서는 이곳저곳 다니면서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혹은 바닷가에 앉아 있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찍는 게 좋더라고요."
친구들이나 애인, 가족들과 사진을 찍을 땐 당연히 앞모습의 활짝 웃는 얼굴을 담는 게 좋다. 하지만 나 혼자 다닐 때는 사람들의 뒷모습과 어우러지는 배경과 자연이 사진에 담기 좋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이런 내 이야기에 생각지도 못한 통찰을 선보였다.
"뒷모습 사진을 찍는 걸 보니 진주 씨는 자연스럽고 본질적인 것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중요하게 추구하는 가치
참아주는 것, 배려하는 것, 사람대 사람으로서 챙겨주는 것, 물질적인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더불어 위와 같은 것들이 내가 중요하게 추구하는 가치인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셨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관계에 시너지가 있어야 그 깊이를 더 증폭시킬 수 있다. 나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관계가 덜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곧 말을 이어갔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난해한데.. 아마 진주 씨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보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 거예요. 그리고 진주 씨는 정말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하고만 말하고 싶어 할 거고, 그 범위가 좁은데 굉장히 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인간관계의 폭이 그렇게 넓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주로 주위에 두는 편이다. 적을 일부러 만들지 않기는 해도 싫은 사람이나 관심 없는 사람은 애초에 내 바운더리에서 배제된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소중히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사소하게 챙겨주는 것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계의 범위가 아주 협소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항상 눈을 부릅뜨고 깊은 사이로 발전할 사람들만 골라 사귀진 않으니까.
이렇게 일곱 번째 상담의 모든 이야기를 마쳤다. 다음 시간엔 가치관이 미치는 나의 인간관계. 즉 더 범위를 좁히자면 이성과의 관계에 어떻게 적용되어 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관계를 잘 헤쳐나가야 할지 이야기하기로 했다.
물질적인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특징이 있다. 따뜻한 감수성이 있다는 것. 그들에게 내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는 생각까지 미쳤으니 이번 상담은 나를 탐구하는 데에 꽤나 진척이 있었다. 다음 상담은 어떻게 이어질까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