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아의 <도망가자>의 위로
두 달 전, 인생의 절반을 함께한 H에게 연락을 했다. 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걸 알고 있어서 종종 H의 할머니 안부를 물었다. 작년 12월, 아버지는 회복할 수 없을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가 생각났다. 친구의 할머니의 증세가 우리 아버지의 증세와 비슷했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가 떠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 슬픔을 너무 잘 아니까. 친구에게 할머니가 어떤 존재였었는지 너무나 잘 아니까. 힘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거리가 먼 탓에 부고 소식을 듣고도 바로 달려갈 수 없었다. 바로 갈 수 없는 미안함과 위로를 전할 길이 부족했다. 어쩌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선우정아의 <도망가자> 링크를 보냈다. 친구에게 노래를 보내기 전까지 나도 음악의 위로를 많이 잊고 살았다. 정말 힘들 때는 이소라 님의 트렉 앨범을 한없이 들었다. 그 외에는 선우정아의 <비온다> 정도였다. 분명 이집트 다합에서 살 때 음악의 힘을 알게 되었었는데, 까맣게 잊고 지냈다. 심지어 멜론이니 지니니 하는 음악 스트리밍 어플도 듣지 않고 지냈다. 그러다 다합 식구들을 다시 만났고 다시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음악과 사람에게 위로받는다'는 느낌이 무엇이었고 어떤 위로를 받았었는지 기억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친구에게 한마디 말 보다 좋은 음악을 하나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가사에 다 적혀 있으니까.
도망가자
어디로든 어떻게든
내가 옆에 있을게 마음껏 울어도 돼
그다음에 돌아오자 씩씩하게
지쳐도 돼 내가 안아줄게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 뒤 친구는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셨던 사소한 것들을 자꾸 되새긴다고 말했다.
"가장 슬픈 일은 할머니에 대한 기억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질까 봐 그게 제일 두려워. 그래서 자꾸 기억하고 있어. 할머니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할머니가 뭘 좋아했는지. 남자 친구한테도 계속 말해. 중얼중얼. 너도 그런 점이 아마 가장 슬프겠지?"
할머니에 대해 기억하려고 한다는 친구의 말에 눈물을 왈칵 쏟았었다. 언젠가는 목소리도 희미해질 거라는 말에는 오열을 했다. 나는 그 흔한 동영상도 아버지와는 찍은 적이 없었다. 목소리를 기억하려고 애쓰는데 선명하지 않게 기억이 난다. 꿈에라도 나오면 목소리가 선명해질까. 이렇게 친구도, 나도 서로 모르는 사이에 잊힐까 두려워했다. 나는 그런 두려움을 조금 외면하고 충분히 애도하지 못해 길게 앓았다. 친구만큼은 충분히 애도할 수 있었으면 했다. 음악이 내 소중한 친구의 감정을 어루만져주었으면 했다.
두 달이 흐른 지금 그녀는 요즘 선우정아에게 미친 듯이 빠졌다고 한다. 그것도 <도망가자>에 말이다. 나 때문에 듣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계기야 어떻든, 내 소중한 사람이 음악으로 위로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참 기쁘다. 조금은 안심이 된다.
너의 마음 한 구석이 조금은 펴졌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방황하던 나를 음악과 사랑으로 보듬어준 다합 식구들, 쪼그라든 내 영혼에 다시 심폐소생술을 해준 J에게 늘 감사한다. 무엇보다 내 사춘기 시절부터 어른이 되는 길목을 곁에서 응원해주고 서로 힘이 되어 준 감트리오에게 매일 같이 고맙다. 내 곁을 지켜주는 당신들아. 이 지구의 어떤 언어를 빌려도 사랑을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사랑한다.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괜찮아
우리 가자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대신 가볍게 짐을 챙기자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거기서는 우리 아무 생각 말자
너랑 있을게 이렇게
손 내밀면 내가 잡을게
있을까, 두려울 게
어디를 간다 해도
우린 서로를 꼭 붙잡고 있으니
너라서 나는 충분해
나를 봐 눈 맞춰줄래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가보자 지금 나랑
도망가자
멀리 안 가도 괜찮을 거야
너와 함께라면 난 다 좋아
너의 맘이 편할 수 있는 곳
그게 어디든지 얘기해줘
너랑 있을게 이렇게
손 내밀면 내가 잡을게
있을까, 두려울 게
어디를 간다 해도
우린 서로를 꼭 붙잡고 있으니
가보는 거야 달려도 볼까
어디로든 어떻게든
내가 옆에 있을게 마음껏 울어도 돼
그다음에
돌아오자 씩씩하게
지쳐도 돼 내가 안아줄게
괜찮아 좀 느려도 천천히 걸어도
나만은 너랑 갈 거야 어디든
당연해 가자 손잡고
사랑해 눈 맞춰줄래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가보자 지금 나랑
도망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