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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기 Sep 23. 2015

따뜻하고도 잔인한 한국의 ‘정’문화

독특한 한국의 ‘정’ 문화

박수근 <빨래터>
“정(情)이란 개념이 참 오묘하고, 독특하다. 영어, 불어 사전을 뒤져봐도 번역할 길이 없다.”

프랑스 작가이자 200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e Le Clezio)의 말이다. 

*한국의 ‘정’이란 단어를 좋아한다는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정’은 한국 사회 곳곳에 깊숙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독특한 한국 고유의 문화이기 때문에 외국인들에게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을 이해시키려면 가장 필수적이면서도 설명하기 힘든 그 무엇 이다. ‘정’ 하면 떠오르는 초코파이의 경우에도 선전에서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라고 하지 않나? 한국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지만 외국 사람들은 백마디 해도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든 것이 ‘정’인 것 같다.


너무 광범위 한 개념이면서 어떠한 면에서는 굉장히 세밀한 특징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예로, 정의 대상은 한정되어 있지 않다. 사람은 물론, 강아지, 동네, 학교, 회사, 심지어 이불이나 자동차 같은 물체도 다 포괄한다. 또한,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특징이 있다. 정은 함께 오랜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독특한 감정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흥미로우면서 외국인들이 가장 이해하기 힘들게 하는 점은 ‘고운 정’뿐만 아니라 ‘미운 정’도 존재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오랫동안 괴롭힌 존재와도 왜 ‘정’이 쌓일까? 이 점은 나에게도 의문이다.


따뜻한 한국의 ‘정’


한국에서 오래 생활한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좋은 점을 꼽으라 하면 ‘정’은 항상 언급 된다. 그들에게 이제 ‘정’이란 따뜻함, 세심히 챙겨주는 손길, ‘우리’라는 소속감 등의 느낌이 아닐까?

이렇듯, ‘정’은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감정적 공유의식과 ‘가족’과 같은 결속력을 갖게 해준다. 예로,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이 큰 국가 Event에는 5천만 국민 모두가 함께, 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기쁨과 안타까움, 슬픔 등을 가슴으로 느끼지 않는가? 이러한 집단적 ‘뜨거움’은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한국 ‘정’문화의 특징이자 너무나도 큰 장점이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나 역시도 뿌리는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정’에 끌린다. 가족은 물론, 오랫동안 함께 ‘정’을 나눈 친구들, 그 친구들과 매일 장난치며 누볐던 동네, 가장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며 ‘정’을 주고받고 있는 회사 동료들, 그리고 심지어 예전에 키웠던 죽은 강아지에 대한 ‘정’도 아직 남아있다.


직장에서의 ‘정’ : 우리가 남이가?


‘정’의 좋은 점을 언급하려면 수도 없겠지만, ‘정’의 무서운 점은 ‘우리’가 아니면 ‘남’이 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 안에 들어서 서로 챙기고 따뜻함을 주고받는 같은 식구가 되는지, 아니면 나와는 상관없는 존재가 된다. 문제는 ‘우리’이기에 무리한 부탁도 거절하기 힘들어 지고, ‘우리’이기에 우리 식구를 먼저 챙겨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은 한순간에 떨어지기도 한다. 가장 무서운게 ‘무관심’이라고 했던가? 정이 떨어지면 한순간의 ‘우리밖’의 존재가 되어 ‘남’이라는 존재가 된다는 점은 어찌보면 참 따뜻하고도 잔인한 것 같다.


자 이제 이러한 ‘정’의 문화가 대기업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왜 내 생각엔 인사(Human Resource)의 역할이 해외 기업들에 비해 더 중요한지 의견을 제시해 볼까 한다.


‘정’의 문화는 한국 기업문화의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 정년 보장 등 좋은 점도 물론 어느 정도는 있지만 공정성을 무너트림으로써 부정적인 영향이 훨씬 크다고 생각된다.


우선 한국에서는 Role & Responsibility(권한과 책임)가 개개인 별로 명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아직도 공개채용 하는 곳이 많다. 일단 뽑아놓고 나중에 부서에 배치를 하여 일을 준다는 것인데, 명확한 Job Description(직제분과)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다. 심지어 조직이나 사업장, 부서간에도 ‘힘이 쌘’ 임원이나 리더가 오면서 더 많고 중요한 Role을 가져감으로써 R&R이 바뀌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 이점이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힘들어 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불명확함은 굉장히 주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는 빌미를 만든다.


‘정’의 문화로 인한 부정적인 또 한가지는 전문성이나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기업 총수나 사장과 관련이 있는 ‘낙하선’들이 주요 Post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력이나 능력 보다는 ‘줄’ 과 ‘빽’에 의해 결정되는 인사는, 그 회사에서 본인의 인생을 대부분 바치고 실력을 키워온 ‘우리’ 밖에 있는 구성원들의 커리어 비전(Career Vision)을 파괴하고 상실감을 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더 무서운 점은,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의 전문성 부족으로, 아랫사람들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애초부터 불명확한 R&R로 인해 객관적인 수치들로 인한 평가가 상대적으로 어려운데, 전문성 없는 리더들은 무엇을 보고 평가를 하겠는가? 결국 누가 본인에게 잘 보이고, 줄을 잘 서고, ‘우리’라는 집단으로 들어올지 실력 보다는 ‘사내 정치’와 보여주는 ‘Showing’이 많은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야근, 무조건 적인 충성 등 많은 부정적인 면들이 파생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럼…… 앞으로 나아갈 방향?


위에 나열한 것처럼 ‘정’의 문화로 인한 부정적인 면이 많다. 이것은 어떻게 극복을 할까? 나는 뿌리깊은 ‘정’의 문화를 완전히 무시 할 순 없고, ‘우리’라는 문화를 벗어 날 수 없기 때문에 한국의 인사(Human Resource)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두 가지 이다.


한국 대기업에서는 인사(Human Resource)가 채용, 인력이동 등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직무에 대한 깊은 이해도 및 각 부서의 니즈를 모두 파악하고 인력이동을 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장 적합한 인력을 채용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기본도 지켜지기 어렵다. 이렇게 ‘인사’에서 주관이 되어 행해지는 공채 문화를 줄여가야 한다고 본다.


또한, ‘인사권’이 있는 ‘갑’의 부서로, ‘우리가 남이가’ 하며 본인의 식구들만 챙기게 되면서 비합리적인 인사가 이루어 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반면, 외국 회사들은 각 부서에서 상세한 job description를 가지고 적절한 인력에 대한 채용을 부서장 및 부서원들이 한다. 또한, 각 구성원이 자유롭게 다른 부서나 지역으로 옮기는 사내 인트라넷이 잘 발달한 곳이 많다. 본인이 전문성과 경험만 있다면, 언제든 충분히 부서를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대기업도 이 길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전문성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많은 것을 시스템화 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의 문화는 ‘우리’라는 공동체의 식구들을 챙겨 줄 수 밖에 없는 구조이며, 이것은 문화로 뿌리깊게 자리잡아 바뀌기 힘들다. 따라서, 주관이 들어갈 자리가 최대한 배제되도록 최대한 System화 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최대한 공정하게 만들기 위한 많은 연구와 세밀화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한국 인사가 당면한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www.jinkieun.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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