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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페티 Sep 14. 2021

아~ 엄마로 살기 더럽게 어렵네

나의 산후우울증이야기 1



육아를 시작한 지 8개월쯤 이였을까?

첫아이라서 젖병 삶는 법, 분유 타는 법, 기저귀 가는 법 하나하나 책으로 유튜브로 공부하며 아이를 키워나가는 게 제법 손에 익을 무렵이었다.


서서히 더 육아가 편해지고 여유가 생겨야 하는데 이상하게 나는 몸은 편해졌지만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신랑이 출근하고 나서 집안에 찾아오는 고요함이 너무나 외롭고 혼자 남겨진듯한 기분이 들어 배웅하고 나서 혼자 울기도 했고, 아이가 예쁜 것과는 별개로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게 느껴지고, 출근해서 일하는 남편도 고단하겠지만.. 말이 통하는 상대와 하루를 보내는 남편이 부러웠다.


또 성격이 잘 맞아 같이 일하는 동료와 재미나게 일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기도 했지만 , 부러워지면서 얄밉게 느껴지기도 했다. (미안 남편..)


요식업을 하는 남편 직업 특성상 브레이크 타임이 있는데 그 시기에 온전히 본인의 계획대로 쉴 수 있음이 부러웠다. 나는 겨우겨우 재우고 깰까 봐 숨죽이면서 쉬는데.. 졸려하면서 재워지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재우다 재우다 화가 나기도 했다.


부끄럽지만 아이가 아무 의미 없이 때린 손길에 욱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미뤄둬도 결국 내 몫인 집안일도 낯설었다. 주부도 엄마도 동시에 갑자기 바뀐 내 역할들이 내 일상이 너무 낯설고 신나게 놀러 다니는 열심히 일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어느 날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내일 아침에 또다시 반복될 육아가 두려워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이 안오기 시작했고,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주 왈칵 눈물이 나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서 혼자 있고 싶고




그냥 사라지고 싶다.




이런 생각을 계속하고 있는 나를 인지했다.



다들 이런 걸까?

육아하면서 이 정도 힘든 상황들은 다들 겪는 건데 내가 너무 나약한가?

내가 유난인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하지? 이런 생각 들을 혼자 하면서 자책을 마구마구 하다가..



문득, 맘 카페에 산후우울증 게시판이 있다는 게 생각이 나서 그곳에 하소연을 막 하기 시작했다.


늦은 새벽이었는데도 깨어있는 나의 육아 동지들은 자신들의 경험담과 위로를 담아 댓글을 달아주었다. 그제야 아 이러다 정말 나 큰일 나겠구나, 나 지금 많이 힘들구나.. 힘들어도 되는 상황이구나 싶었다.


상담이나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아야겠다고 다짐 후 새벽 다섯 시에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남편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져 엉엉 울며 '나 좀 이상한 것 같아...' 하면서 내 감정을 막 쏟아내었고 남편은 나를 안고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같이 얘기를 나누어 주었다.


해가 뜨자마자 포털 사이트에 집 근처 정신과를 검색했고, 친정 엄마는 요양원에서 근무 중인지라.. 코 시국에 이동제한이 있어서 고민하다가 시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이전 글에 산후조리는 알아서 한다고 매몰차게 보내 두고서는 또 필요할 때 찾는 게 아주, 아주 죄송스럽고 민망했다.


이런 내가 어머니도 미우실 수 도 있으셨을 텐데...

전화해서 어머니 요즘 제 마음이 이래요. 아기 좀 하루만 봐주실 수 있나요? 저 친구들도 보고 싶고 조금 분리되어 있고 싶은데 신랑이 주말에도 일을 해서 시간이 안 나서요.. 하고 부탁드렸는데 말해줘서 고맙다고 주말에 오겠노라고 해주셨고 그렇게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혼자 개인 시간을 가져보게 되었다.


(덤덤한 어투로 풀어냈지만 혼자 병원 가는 길 벤치에 앉아서 엉엉 울면서 얘기했다.ㅜㅜ)


산후 우울증은 아이를 낳고 나면 80% 이상의 확률로 온다고 한다. 아이를 낳고 난 직후에 가장 우울감이 심해지고 이후에 차차 괜찮아진다고 한다.


급격한 호르몬 변화, 생활의 변화.. 등 이론적으로는 그렇다고 한다.


아이를 사랑하면 이런 감정은 느끼지 않을 것 같은데 나는 모성애가 없나?


평소에도 습관처럼 자책하던 나의 마음은 육아를 하면서 이런 식으로 나의 힘듬에 대해 죄책감과 자책을 하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나도 엄마가 처음인데.

당연히 서투르고 힘들 수 있는데 모성애라는 단어와 지금의 나의 모습은 너무나 상반되는 것 같고,

인스타나 주변을 보면 아이가 너무 이뻐 힘듬도 모르는 거 같은데.. 이런 나의 모습이 자라나는 아이에게 해를 끼치는 건 아닐까 싶어서 두렵기까지 했다.



현대인들의 마음의 감기, 나도 그 감기에 걸렸다.

감사하게도 아무것도 못할 만큼 아파지기 전에 알게 되었다.



우리는 엄마, 모성애라는 단어에 눌려

이전에 살아왔던 나 자신을 지우고 아름다운 엄마의 모습,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으로 가까워지려고 무리를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 나에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말은

아이와 육아는 같지 않다.

아이는 아이고 육아는 육아라는 말이었다.


아이는 예쁘지만 육아는 하기 싫을 수 있다고.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는 게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에게도 이 문장이

위로가 되면 좋겠다.  엄마 이기전에 사람이니까

힘들어도 되고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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