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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페티 Oct 07. 2021

엄마는 부캐일 뿐이오

나의 산후우울증 이야기 2


어릴 적에는 나랑 장례식장은 아주 먼 나라의 장소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으니 꽤 많은 부고 소식들이 들려온다.


최근에는 친하진 않았지만, 건너 건너 우리 언니 친구 동생의 부고 고식을 들었다.

산후우울증으로 투신하셨다고.. 그 소식을 들으니 그 어떤 부고 소식보다 더 마음이 아프고 무거웠다. 첫째는 이제 네 살, 둘째는 백일도 안 지난 핏덩이라고 하니.. 그 꼬물이를 뒤로하고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이 공간에 거론하는 게 실례일까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지금은 편안하길..


이전 글을 보신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산후우울증이 왔었고, 다행히 일찍 자각해서 병원도 다니고 약도 두 달여간 먹고 나니 많이 극복한 상태이다.


처음 병원에 가는 길에서 드라마에서 봐오던 삭막한 정신과 모습이 떠올라서 긴장이 되었다. 그런 병원도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다행으로 내가 찾은 병원은 동네에 흔한 그냥 내과 같은 분위기였다. 아주 의외였다. 진료를 시작하자마자 남편에게 그랬던 것처럼 눈물이 나와서 엉엉 울면서 얘기 하기 시작했다.

차분히 진정이 될 때까지 들어주시고 위로를 받고 난 뒤, 기계와 문항을 체크하며 스트레스 지수와 우울증 상태에 대한 검사를 했다.


우울증에는 상, 중, 하 삼단계로 나뉜다면, 나의 경우는 중간 정도였고, 대인기피증 및 죄책감을 느끼는 척도의 만점은 40점이라면 난 40점 만점이었다.


객관적인 수치로 얘기를 듣고 나니, '아 내가정말 힘들었구나'생각을 하며 내 안에 남아있던 죄책감을 털어내기가 쉬웠다. 모성애만으로 이겨내기엔 난 이만큼이나 힘들었구나 싶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약물치료를 하면서 매주 내원하기로 하고, 약을 먹기 시작하니 먹자마자 ‘오!? 효과 좋은데?’는 아니었지만.. 매주 아기를 맡기고 혼자 산책해서 병원에 가는 과정과 만나서 속 얘기를 할 사람이 생기니 심리적인 안정감이 아주 컸다. 거기에 나는 약을 먹으니 나아질 거야 라는 믿음도 도움이 됐을 것 같다. 몸으로 느껴지기에는 한 달 가까이 됐을 때부터 짜증과 화도 서서히 줄어들고, 집 밖에 나서도 목적지 없는 산책이 싫어 우울했는데 유모차 끌고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두 달쯤 먹으니 괜찮아진 것 같아 자꾸 깜빡하고 안 먹기도 하고 병원도 게을리(?) 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솔직하게 요즘 약도 잘 깜빡하게 된다고 말하니


 효과가 있다고 바로 확 안 먹고 까먹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게 그러다가 갑자기 확 재발하는 경우가 많아요. 잘 챙겨 드셔야 해요




 혼나는 기분으로 진료를 끝내고 잘 먹어야지! 다짐했지만 그 이후로 내가 느끼기에 괜찮은 것 같아서 서서히 약을 안 먹기 시작했고,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생리할 날짜가 다가오면 여전히 폭군이긴 하다. 생리가 다가온다는 핑계를 대는 게 싫지만 어쩔 수 없다. 호르몬의 힘은 생각보다 어마 무시하기 때문이다.  ㅠㅠ 어쩔 수 없이 난 늘 진다.


최근엔 복직한 친구의 고민도 들어주었는데 대부분 육아하면서 가장 우울해지고 어려운 부분이 단기 프로젝트처럼 이때까지만 참으면 된다 하는 기한이 없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해결책이 없는 부분에 대한 고민과 좌절감이 힘든 것 같다.


돈은 벌어야 하지만, 아이를 맡길 수 없고.

아이를 가족에게 맡겨도 이래저래 눈치가 보이고

어린이집이 나쁜 곳이 아닌데도 오랜 시간 보내기가 마음 아프고 미안해 한참을 망설이게 되고..

참 어려운 문제다. 


내 생활을 유지하며 아이를 함께 양육한다는 건ㅜㅜ







@그럴땐 바로 토끼시죠 책의 일부, 추천합니다!




평소에도 잔 걱정이 많았고 이래저래 행복함보다 우울감에 더 집중하며 자주 지치곤 했던 나지만 이번에 산후우울증을 겪고 나니, 역시 가장 중요한 건 나를 가꾸는 거라는 걸 느꼈다. 엄마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우울감을 외면하기 바빴지만 제대로 마주하고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아이를 낳았어도 여전히 난 나고, 나로서 계속 살아갈 거니까 말이다.


지금은 잘 이겨낸 것 같고 전보다 나아진 게 사실이지만, 꽤 자주 울고 싶어 지고 화도 나고 도망가고 싶어지는 순간들도 있다. 전과는 다른 점은 내 감정이 지금 이렇구나, 맛난 걸 먹자! 노래를 듣자! 잠을 자자 등 적극적으로 감정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낼 여유가 생겼다.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글이길 고민하며 한참을 망설였던 글이지만 

언제나 글을 쓰는 이유는 작은 위로라도 누군가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혼자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 먹고 잘 잤으면 좋겠다.


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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