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삶
누가 내준 것도 아닌데, 인생의 과제 같은 걸 열심히 해내고 있었다. 수능 치고, 대학교에 가고, 취업 준비를 하고, 출퇴근을 시작해 일을 하고, 승진을 했다. 분명 모든 과제에서 꾀부리지 않고 성실히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문득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회사 생활이 질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회사 가는 일이 괴로워 아침에 눈물을 훔치며 일어날 때가 태반이었다.
실은 무서웠다 출근하는 일이. 회사에서 팀원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 그들은 서로를 존중, 배려하는 일에 저항하는 사람들처럼 가시를 세우고 비아냥거리는 일을 즐겼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팀에서 유일한 여자인 나는, 온갖 여자 문제에 해명해야 했고, 남의 얘기로 시간 때우길 좋아하던 그 회의실에서 억지 이야기와 사생활을 짜냈다. 히스테릭한 말투와 손짓에, 잘난 척하는 허영과 장난으로 치부하는 대상을 가리지 않는 조롱까지. 팀에서 보낸 몇 년의 시간 동안 나의 성격과 상식이 줄곧 공격받으며 나의 자존감은 누구라도 와서 뒤흔들어 쓰레기통에 처넣어버릴 수 있을 만큼 빈약하고 취약해져 버렸다.
그런 상태로는 연봉의 두 배를 준다고 해도 버틸 수 없다. 돈보다 중요하고 사회적 체면보다 더 소중히 지켜야 할 것이 ’나‘라는 존재이니까. 그리고 남편 또한 그 무엇보다 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배우자이므로 퇴사를 적극 응원해 주었다. 몇 년 만에 다시 팀으로 돌아온 팀장님은 퇴사를 결심한 나에게 신입 때 모습은 어딜 가고 이렇게 낯빛이 좋지 않냐며 그간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물었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장 끝내버리고 싶었고, 얼른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고 싶었으니까.
인생에서 감당해야 할 것 중 가장 견디기 힘든 게 나 자신의 상실 아닐까. 생각과 행동이 아무 타인에게나 쉽게 휘둘리고, 스스로 판단할 수 없게 되고, 자격과 능력을 의심하다 못해 잃어버리고, 불안의 맥박이 온몸 구석구석에서 뛰는 것이 느껴져 온전히 잠도 잘 수 없고 책 한 줄도 읽기 힘든 그런 시간을 보낼 때 ’나‘는 자취를 감추고 불안정한 ‘무엇’이 되어 시간의 강에 되는대로 휩쓸려갈 뿐이다.
퇴사하고 난 뒤, 나는 한동안 해방감에 오히려 들떴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지, 무너진 자존감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등의 고민은 덮어두었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으로 매일을 보냈다. 그리고 막연하게 생각만 해보았던 소품 판매를 해보겠다고 나섰다. 시작은 이상할 정도로 의욕적이었다. 상점 이름을 며칠 만에 떠올리고, 블로그를 뚝딱 만들고, 거래처를 드나들고, 사진을 찍어댔다. 직장을 잃은 패배감을 씻고 싶었고, 남편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상처받은 나를 잊고 싶었다.
그러나 삶은 때로 지독하리만치 진실을 쫓는다. 마주하지 않고는 나아갈 수 없다고 일러주며 여지없이 허물어진 자아를 들춰내곤 한다. 아니나 다를까 호기롭던 시작의 흥분이 가라앉고 이내 나의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탈 때처럼 오르고 내리고 비틀기를 시작했다. 과도한 의욕으로 시간에 맞서다가도 무작정 찾아오는 정신적 빈사상태에 처해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못하게 불안과 우울에 절여 추락하였다.
내 삶의 질문은 그렇게 던져졌다. 왜 사는지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끅끅 거리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던 그때, 비로소 나는 답을 찾기 시작했다. 내 나이 30살 때의 일이다. 30년을 살았지만 삶이 낯설어 눈을 뜨는 일도 버거웠다. 뒤집기부터 시작해야 할 일이었다. 기나긴 대답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