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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진경 Aug 28. 2024

배우자와 걷는 길

함께 바라보는 즐거움

 내가 상점을 오픈한 시기는 전지구적 아니, 전인류적 비상사태를 불러일으킨 코로나19 시대였다. 감염률이 높은 그 바이러스는 사람들을 격리시키고 사회를 폐쇄시켰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혼란스럽게 지나가는 동안 많은 이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왔는데, 우리 부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편은 장기 재택 근무자가 되었다. 2년의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는 동안 그는 조금 도태되어 있었다. 사무실이라는 공간에서 장기간 벗어나다 보니 ’ 회사원‘이라는 그의 정체성이 희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은 나와는 많이 다른 사람이다. 그는 꼼꼼하고 예리하지만 히스테리를 부리지 않고, 다정하지만 유난은 떨지 않는다. 현실적이고 효율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알았고 그래서 사소한 걱정은 사소하게 넘겼다. 갈등 없이 올바르고 도덕적이었다. 현실에 만족하는 법을 알았고 과거에 불려 가 휘둘리거나 미래를 불안에 저당 잡히지도 않는 사람이다. 그의 동력은 ‘안전(안정)’에서 나온다. 변화는 그가 선호하는 선택은 아니다. 미리 걱정하는 사람은 아닌지라 재택근무가 길어질 때도 무리 없이 지내던 그가 다시 회사에 복귀할 때쯤 걱정을 내비쳤다.


 내가 격변의 시기를 겪는 사이 남편은 축소된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나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는 일이 우리 부부의 주된 화제가 되었다. 회사 밖의 세상에 사는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공유하고, 나와 함께 새로 사귄 사람들을 만나고, 상점을 함께 돌봤다. 남편은 문득 회사 이후의 삶을 생각했다. 건설회사는 사양길을 걷고 있었고 입사 이래 많은 동료들이 자의든 타의든 떠나갔다. 코로나로 집에 방치된 기간 동안 기계 엔지니어로써의 능력도 도태된 것은 아닌가 의심했다. 남편은 무엇보다 제게 주어진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것은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때아닌 진로 고민을 시작한 남편을 보며 나는 미안하게도 신이 났다. 그즈음 나는 탈 서울을 꿈꿨다. 안정적 수입이 우리에게 보장해 주는 것은 고작해야 안정적 소비라 생각했고, 아이가 없는 우리가 고민할 것은 재산 축적보다 삶의 주체성이라 여겼다. 어쩌면 평생 해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을 재화의 수단이 아닌 삶의 방식으로 삼고 싶었다. 이전에 선택한 그 ‘일’이 고민 없이 서류 통과로 정해진 것을 생각하며 회한에 잠겼다. 남편과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매일 골몰하며 대화했고, 그 끝에 그는 우드 카빙 공방에 다니기 시작했다. 


*거대한 전환의 시대에는 자신을 아는 것보다 자신을 변형시키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아는 것은 딜레마에 빠지게 하지만 선택하는 것은 딜레마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알게 한다. 하지만 이해는 행동하게 한다.

*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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