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흩어지지 않기
남편이 퇴사하던 날에는 조촐한 파티를 했다. 얼떨떨하던 남편의 얼굴, 막연한 불안감과 서로를 향한 믿음을 공유하며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하루하루 현재에 충실하기로 다짐했다. 우리의 삶을 응원하기 위해 제주도로 한 달 살기 여행을 떠났다. 날마다 아름다운 바다의 빛깔과 뜨겁다 못해 따가웠던 햇살, 눅진한 숲의 색과 향, 한갓진 시골 골목길, 깊이 모를 밤하늘까지. 그렇게 인생의 한 시기가 일단락되었다.
서울 집이 정리될 때까지 남편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고, 지인의 호의로 인테리어 일을 돕기도 했다. 심지어는 잠깐 배운 한국 자수 실력으로 한복에 자수를 놓기도 했다.(자랑한 적은 없지만 남편의 자수는 꽤 아름다웠다.) 그의 인생이 다채롭게 변하기 시작했다. 대학생 시절 서로가 그린 삶은 아마도 무사히 취업해 사회의 일원으로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착실한 저축, 안온한 보금자리 같은 것이었다. 내 인생이 한순간 절망에 뺏길 줄은 몰랐을 것이다. 남편 인생에 목수라는 변수가 생길 줄은 정말 몰랐을 것이다. 인생을 미리 예상하는 일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서울 집을 매매하지 못하여 우리가 이사 오게 된 집은 남편이 유년 시절부터 가족들과 함께 살던 40년 된 주택이 된 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남편과 연인으로 교제하던 시절에 나도 와봤던 집이다. 2층 집이지만 1층은 세를 주기 위한 원룸과 투룸으로 이루어져 있다. 1층 원룸 중 하나를 남편의 목공 작업실로 만들었고, 2층은 콘크리트 벽체만 남도록 모두 철거하고 지금의 집으로 공사했다. 이제는 희미하게나마 안목과 취향이 생겼고, 자금도 턱없이 부족했으므로 인테리어 업체 없이 목수님과 인테리어를 상의하고, 모든 자재를 직접 구하러 다니며 집을 완성했다.
새롭지만 일면 익숙하기도 한 그 집에서 우리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우리가 세웠던 목적지는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이제 앞날을 경솔하게 예측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생의 모든 순간에 정진하리라. 함께.
‘시도 아카이브’는 여러 여정 끝에 우리 부부의 브랜드가 되었다. 이제 막 발걸음을 땐 신생 공방으로서 아카이브라고 부르기도 머쓱한 규모임에도 이름에 아카이브를 붙인 것은 아마도 이 일이 꽤 오래 지속되리란 예감 때문 아니었을까.
콜렉팅이 아니라 아카이빙인 이유는, 현재가 지나 과거가 된 일들을 모아두겠다는 의지이다. 그것은 실패나 성공과는 무관하며, 임의 선택이 아닌 총체적 집합이다. 그리하여 미래의 과제나 트랜드보다는 과거로부터 이어진 경험의 깊이, 쌓여가는 정취로 우리를 규정하고 싶다.
인스타그램의 환경이 많이 바뀌어 간다. 사진보다는 영상이 주된 콘텐츠로 자리 잡아가는데, 나는 영상에는 영 소질이 없는 것 같고, 아무래도 사진-인간으로만 남을 것 같다. 단지 노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내가 브랜드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이 그러했듯, 성급한 결론이 아닌 꾸준한 경험과 성취가 ’ 아카이빙‘되어 짙은 정취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이다. 시간의 축적은 그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이루어진다.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밀도가 달라질 뿐이다.
당연히 시도아카이브가 사람들에게 관심받길 바란다. 그러나 그 관심이 쉽게 모여들고 쉽게 흩어지는 일은 바라지 않는다. 상품에 불필요하게 과장되거나 포장된 의미를 부여하고, 지속적으로(지겨울 정도로) 전달하여 소비를 부추기는 행위를 멈출 수 있을까 고민했고, 누구라도 우리의 상품을 그 어떤 방해도 없이 고심 끝에 고른 생활의 물건으로, 쉽사리 식지 않는 애정의 물건으로 소유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우리에게 가장 큰 숙제라고 썼다.
남편이 혼자 판매할 상품을 만들게 되면서 상품의 가짓수를 쉽게 늘릴 수도, 대량으로 생산할 수도 없으므로 우리는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고, 제 수명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듦새를 가다듬는 것이 유일한 몫으로 여기고 있다.
오래도록 고민하여 쌓은 신념을 쉽게 바꾸고 싶지는 않다. 담담하게 혹은 대담하게 우리의 몫을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