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삶이 앞으로 나아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만 삶은, 자아가 그렇듯, 여러 갈래로 나뉘어 제각각의 성장과 후퇴를 이어간다. 어떤 부분은 힘차게 걸음을 옮겨도 또 다른 부분은 발걸음을 지체하며 뒤쳐지기도 했다. 나에게는 우울증이 삶의 한쪽 발목을 잡았다.
연희동 상점을 시작하면서 하루하루를 당차게 보내리라 다짐했음에도 마음 한구석만은 늪지대처럼 고여 썩어가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그 늪은, 빠지는 순간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갈 것만 같았고 어리석게도 또다시 피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상점이 한가할 때, 불면에 시달릴 때마다 열병에 걸린 것처럼 몸에 힘이 빠지고, 불안이 온몸에서 고동치고, 목이 타는 듯 쓰라렸다.
끝내 스스로 이 병을 이겨낼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을 찾아갔고 우울증과 불안증 진단을 받은 후 약을 처방받았다. 네 알의 작은 알약, 그것이 마음의 결석처럼 느껴졌다. 상처가 실재하는 것만 같아서 약을 삼킬 때마다 마음이 아렸다.
어째서 삶은 이런 방식이 아니면 안 되는 걸까. 무너뜨리고, 몰아넣고, 구덩이에 처넣는 이런 방식으로만 자신의 상처를 깨닫게 할까. 매일이 아슬아슬했다. 삶과 삶 건너편 사이를 외줄 타기 하는 심정으로 한걸음 한걸음 위태롭게 살았다.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도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남편은 그만의 방식으로 나를 돌봤다. 안정적인 사랑과 함께 적당히 방관해 주었다. 그리고 나의 부름에 성실히 응답해 주었다. 소란을 떨지 않는 그 방식은 메마른 우듬지를 적시는 봄비와 닮아있다. 새싹을 터뜨리는 힘이었다.
마침내 기록을 시작했다. 날씨를 기록하고, 읽은 책을 기록하고, 병원에 다녀온 일을 기록하고, 상점에서 있었던 일을 차곡차곡 써내려 갔다. 어떤 글은 무심히 쓰였지만, 어떤 글은 너무도 생생한 속마음이 담겨 다시 읽기가 두려울 적도 있었다. 우리의 인생은 얼마간 예상가능 했다. 흘러온 길도, 앞으로 흘러갈 길도 빤하여 기록하는 일에 게을렀다. 언제고 그런 삶이 지속된다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삶은 계절이 뜨거운 여름에서 청청한 가을로, 선선한 바람이 살을 에는 강추위로 변하듯 한순간에 행복에서 우울로, 기쁨에서 슬픔으로, 사랑에서 이별로 옮겨간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그때부터 우리는 쓰기를 시작한다.
바깥날은 하루하루가 변덕이다. 어제는 뇌우가 쉬지않고 내리치더니 오늘은 매미가 울음을 터뜨린 뜨거운 한낮이 펼처졌다. 날씨는 언제나 기억의 한 부분이다. 그날은 비가 한없이 왔지, 말간날이었지, 공기가 어깨를 짖누르는 회색의 날이었지, 하며 기억을 시작한다. 계절의 은유와 묘사는 얼마나 많이 쓰이던가. 딱 그만큼, 얼마나 많은 감정과 삶의 모습들이 빗대어져 있던가.
감정과 날씨는 닮은 점이 많다. 맑은 날도 단순히 맑은 날이 아니라 하늘이 청청하거나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거나 순풍이 불어오고, 꽃이 나리기도 한다.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우울한 것은 없다. 불안이 마음을 짓누르고, 사는 일이 허무하여 막막하고, 슬픔이 물밀듯 밀려오기도 한다. 하루도 같은 날씨가 없듯,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다. 내일의 감정과 날씨를 쉽게 예측할 수 없었고, 체육대회 날에도 비가 오듯 속수무책이었다.
날씨에 영향받지 않을 수 없듯이, 내 감정에 영향받지 않고 살아갈 순 없다. 다만 날씨와 내 감정에 맞는 대처를 할 수 있다. 비 오는 날을 싫어한다면 외출을 하지 않고 따뜻한 차와 독서를 즐길 수 있고, 맑은 날 어디든 산책할 수 있다. 우울한 날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 누군가는 관계 속에서 감정을 회복하고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한다지만, 36년을 살아본 결과 나에게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없이 좋은 충전의 시간이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독서다. 책에도 집중되지 않는다면 뭘 해도 오늘 될 일이 없다는 것이므로 낮잠이나 자는 것이 좋다.
이렇듯 유연하고 단순하게 매일을 보낼 수 있기를, 가뿐하게 마음을 먹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또한 하루하루 쉬이 변하는 감정보다 더 단단한 내 존재 자체의 가치감에 두 발을 딛고 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