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사람들은 사회의 세속적 가치들에 동화되어 미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해야 한다는 자각도 없이 사회의 일원으로 무사히 살아가는 일에 매달린다. 평범한 일이다. 그럭저럭 잘 살아나고 있는 듯해 보인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세운 견고한 가치관과 귀한 삶의 가치를 찾아내어 사회로부터 다치지 않도록 소중하게 지키며 살아간다. 사람들 눈에는 어쩐지 별종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삶은 만만하지 않아서, 평범한 이들에게 불현듯 사회적 자리를 뒤흔들 만한, 박탈되는 사고와 균열들이 발생한다. 내가 쌓은 얼핏 견고해 보였던 구조들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그 잔해 속을 휘청휘청 헤쳐보아도 유의미한 동력은 찾아지지 않는다. 다시 만인의 가치관에 따라 사회의 자리를 허둥지둥 찾아가거나, 모든 잣대를 외면하고 그럭저럭 안전한 선택지를 찾아 서서히 퇴보하거나 혹은 완전히 몰락해 버리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은 균열에 있다. 영락한 자신을 마주하고 별종들을 눈여겨본다. 그 별종이 무엇 때문에 견고하고 고요한 자세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지. 세속적 가치에 한참 벗어난 그들이 어째서 비참하지 않은지. 그들이 찾아낸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마침내 고민을 시작하는 것이다.
퇴사가 꼭 그 균열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 생활이 누구에게나 무의미한 것 또한 아니다. 다만 나와 남편에게 회사가 삶을 지속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해주지 못했고, 스스로 찾지 못했던 것이다. 최인철 교수님의 책 <굿라이프>를 보면 의미의 의미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의미란 중요성(significance)이다. 개인적으로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이 모두 의미다. 의미 경험은 철저하게 주관적이어서 아무리 타인이 의미 없는 일이라고 간주하더라도 자신이 의미를 경험하면 그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다. (중략)
의미는 유용성(usefulness)이다. 자신의 행위가 쓸모 있다고 느낄 때 그 일은 의미를 갖게 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시간 낭비가 아니다'라고 느끼는 경험이 의미다. (중략)
의미는 이해(understanding)다. 인간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욕구 중 하나는 세상을 이해하려는(sense-making) 욕구다. (중략)
의미는 정체성(identity)과 관련이 있다. 자신의 행위가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대답과 연결되어 있을 때, 즉 자신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때 사람들은 의미를 경험한다. 의미 있다는 것은 곧 자기다움을 뜻한다.
정리하자면 자신에게 중요하고, 유용하고, 충분히 이해 가능하고, 특히 정체성과 연관 있는 행위를 할 때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미가 있는 일이란 꼭 자기희생이나 대의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위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행위가 필요한 것이다.
남편과 나는 이제 막 의미 있는 삶, 의미 있는 행위가 무엇인지 깨달아 가는 중이다. 금방 답을 떠올릴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기나긴 대답은 여기서 시작되었고,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