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정심 유지하기
살면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일이 필요하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균형이란 무엇일까. 나는 단언컨대 결코 균형이 '적당함'이나 '중도로 걷는 일'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특정 집단 속에서 살아간다. 특히 한국 사회는 개인주의보다 집단주의적 성격이 강한 문화에 속한다. 그러므로 외부로부터 개인의 삶이 판단되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이를테면 직장을 떠나 세계 여행을 다니는 사람에게 "노후 계획 없이 불안하지 않느냐?" 혹은 버는 돈을 자신에게 열렬히 투자하는 이에게 "저축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또 "술을 너무 많이 먹는 것 아니냐?", "자식 교육을 그렇게 해서 되겠느냐?", "보수가 옳다/진보가 옳다"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참견이 이루어진다. 이때 가장 외부로부터 성가신 간섭을 받지 않으려면 뭐든 '적당히' 그리고 '적절히' 하고 사는 것이 편하다 느껴진다. 급기야 식습관, 여가생활, 일, 소비, 가정, 교육, 운동 등 모든 일에 중용을 따르기 시작한다. 과연 이것을 균형 잡힌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일까?
나에게는 균형이란 '평정심'을 유지하는 일이라 생각된다. 세상은 갈수록 혼란스럽다.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윤리적, 정치적, 환경적 그 어느 면으로 보아도 그렇다. 특히 sns와 온라인 세상이 주 무대가 되면서 과거에는 인지도를 가진 몇몇 인사들의 의견이 주목받았다면 이제는 자신의 계정을 갖는 모든 이들의 목소리가 혼란스럽게 뒤섞이고 있다. 쉬지 않고 스며드는 광고 속 얼핏 이상적으로 보이는 삶의 모습이 소비를 촉진시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시간이 필요하다.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얼마간 외딴섬에 고립된 상태와 같이 스스로를 고요하게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없이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도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위에서 열거한 것과 같은 수많은 장애물들이 나를 나에게 닿는 것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남편은 지금 하는 일을 재화의 수단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늘 생각한다. 일과 생활의 철저한 분리가 필요하지 않고, 일조차도 삶의 즐거움으로, 자아의 실현으로, 기쁨과 행복의 또 다른 표현으로 삼고 싶다. 그러나 부지런하지는 않다. 생활도 일도 적절히 게으름을 피운다. 얼마간 충실히 사회인 노릇을 하며 쌓인 피로도 풀어나가야 하고 둘 다 타고난 성정이 게으른 탓도 있다. 부지런함의 미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이 추구하는 미덕은 결코 아니다. 이처럼 우리 삶의 욕구들과 목표를 고심하여 적절히 배합하고 행동할 때 평정심의 순간이 찾아온다.
우리 부부의 삶이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통달하였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평정심은 순간의 균형적 상태일 뿐이다. 외부의 자극, 내면의 갈등, 상충되는 가치, 대립되는 의견 등이 끊임없이 한 사람의 생을 불안정하게 뒤흔든다. 우리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다. 이 말을 선언하는 순간 우리는 수많은 질문에 대답해야 하고, 스스로도 점검을 되풀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 번듯한 대기업을 부부가 모두 퇴사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길을 찾고 나면 혼란은 사라질까? 그렇지 않다. 공예 작업을 하면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시험에 든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광고를 해야 한다, 사업계획서를 써서 제출해야 한다 등등의 질문에 휘말리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평정심은 어쩌면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싸움이 거의 전부이고 찰나의 평정심 혹은 만족감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다만 삶에 있어 그런 평정의 순간을 자주 찾다 보면, 내가 추구하는 뚜렷한 가치관이 눈에 익기 시작하고, 선택의 순간에 덜 망설이게 되고, 타인에 의해 휘둘리는 일도 적어진다. 삶과 내가 드디어 적절한 조화를 찾아가고 있다는 안심이 든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있어 경계할 것은 윤리적으로 옳거나 긍정적인 생각에 몰두하는 것이 평정심 유지에 더 좋다고 믿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평정심은 나의 욕구를 있는 면밀히 바라볼 수 있는 상태, 거짓 욕구에 휘말리지 않는 상태, 진정으로 바라고 싶은 것을 바라고 행위하는 것들을 의미한다. 균형 잡힌 삶이란 완벽한 삶이 아니다. 타인에게 인정받는 삶이 아닌 저마다 추구하는 삶을 스스로 깨우치고 떳떳하게 나의 길을 살아가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