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적인 삶
우리 부부의 현 주소는, 공예가 남편 그리고 세일즈 담당 아내라 말할 수 있다. 남편이 목공을 시작한 지도 3년이 넘어가고, 우리만의 브랜드를 알린 지는 1년이 조금 넘었다. 여전히 인지도도, 매출도 낮지만 우리에게 매일의 생활을 이끌고 가는 자력이 생겼다는 느낌을 종종 받곤 한다.
남편의 공예 작업은 우리의 삶을 생생하게 만들어주는 구석이 있었다. 공예란 애초에 생활과 밀접되어 있는 작업이다. 아름답고 쓸모있는 물건이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을 통해 완성됨으로써 생활과 깊게 상호작용하는 감각을 갖게 한다. 수저, 접시, 스푼, 포크, 조리도구, 선반장 등을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근대 이전의 시절에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쓸 도구를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이 당연했다. 자신의 생활에 꼭 맞는 모양새로 다듬었을 것이고, 만들수록 그 기능이 보완되어 온전한 모습을 갖추어 갔을 것이다. 미의 기준이 높은 사람의 물건과 기능에 충실한 사람의 밥그릇과 수저가 서로 달랐을 것이다. 조각난 천들을 모아 어여쁜 조각보 보자기를 만들고, 자수를 더해 뽐내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을 하면 현대 생활에 공예의 기술이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간다는 것이 사뭇 안타깝기도 하다.
남편은 누군가 자신을 작가라거나, 공예가라고 부를 때면 무척이나 낯뜨거워 하는 편이다. 그는 목수나 작업자라는 말이 듣기 더 편하다고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대단한 공예 작품을 만드는 것도, 철학과 사색이 담긴 자아 실현을 하는 것도 아니므로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 바이다. 그저 우리가 잠시 잊었던 생활의 한 면모를 다시 찾아내었다고 생각할 다름이다.
어느 날엔가 남편의 작업을 보다가 문득, 카빙은 덜어내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접시를 만들 때면 조각용 도구인 끌을 이용해 나무를 덜어낸다. 끌이 지나간 자리에서 나무 파편들이 떨어져 나가고 나무는 점점 비워지고 가벼워지며 형태를 찾아간다. 뭐든 채우기 바쁜 세상에서 덜어내기란 또 다른 의미의 사치다. 덜어내고 덜어내다 보면 치열했던 마음이 잦아들고 내가 찾던 모습으로 가다듬어 지는 것이다. 작업하는 이의 무게를 들여 나무의 무게를 덜어내니 참 조화로운 작업이 아닌가. 작업에 결코 완성이란 없으며, 자신만의 모습에 이르러 간다. 완전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다. 작업에 삶의 이치가 들어가 있는 것만 같다.
시도아카이브 판매 페이지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를 적어두었다. 진심을 눌러 담아 작성했고, 여전히 우리 부부가 지켜나가는 하루, 생활, 삶에 대한 마음가짐이다.
현대의 사회는 종종 물건의 생산과 유통, 문화의 전파, 개인 삶의 방식까지도 생산 효율의 법칙에 좌우됩니다. 그것은 때로 생활의 적절한 리듬과 오늘 하루의 아름다움을 망각하게 합니다. 우리의 하루가 쉬이 상실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시도 오늘과 내일, 매일의 좋은 시도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하나의 상품이 아닌 안돈되고 건강한 생활의 가치관을 담아내고 싶습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시간이 쌓여 조화롭고 다정한 리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