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상점을 열면서 드디어 내 삶에 두 발을 딛고 선 기분이었다. 몇 장의 사진으로 대체할 수 없는, 공간이 가지는 실존적 감각이 있다. 공간을 꾸리는 모든 행위들은 새로이 만날 이들에 대한 나의 환대였다. 성정이 소심하고 살갑지 못하여 일일이 표현하지 못했기에 더욱이 공간에 애정을 쏟았다.
그러나 애정만으로는 브랜드를, 공간을 운영하기 역부족이다. 결정적으로 브랜드를 이끌만한 필로소피가 부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름다움에 대해, 쓸모와 수명에 대해,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자금의 운영, 그리고 판매의 사후에 관한 것까지. 좋아한다는 감정이나 기분에도 구체적이고 튼실한 뼈대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이 필요했다. 충만하고 깊이 있는 경험을 가질 시간.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기특한 데가 있다. 부족한 나를 탓하지 않았고 과장되게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지난날 나를 괴롭히던 자괴감과 자기혐오의 지리멸렬한 시간을 지나 마침내 나 자신과 화해를 하던 참이었으니까. 매일 사진을 찍으며 내 시선을 살폈다. 부지런을 떨며 전시와 페어, 감도 높은 매장들을 보러 다녔다. 여행을 다녔다. 기물들을 사들인 후 감동하거나 실망하기를 반복했다.
초보 사장님을 위한 주변의 조언과 눈앞의 트렌드에 귀 기울였으나 전적으로 수용하지는 않았다. 그 순간 내게 떠오르는 생각과 판단에 더 집중하려고 했다. 가령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던 지인은 주기적 할인 이벤트를 해야 판매량이 오르지 않겠냐 조언해 주었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나의 손님 중 누구도 단지 금액 때문에 자신의 구매에 실망하는 일은 원치 않았다. sns에 자주 등장하는 아이템을 보고 혹해서 사들였으나 상점에서는 영 어우러지지 못했고 재고를 잔뜩 껴안았으나 새로운 결 한 갈래를 또 찾아냈다고 받아들였다. 그 시간들은 퇴적물을 쌓았고 점차 눈앞에 지표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일을 시작함과 동시에 반가운 연락을 받게 되는데, 바로 <무포장 마켓> 참여 요청이다. 인생에는 예상치 못한 일들, 특히 사람과의 만남이 종종 생길 수 있으며, 나 자신으로 한정된 세상을 타인으로 인해 넓혀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 막 알아가는 나이였다. 때는 2018년도였고, 지금처럼 환경 운동이 생활 밀접해지기 전의 일이므로 나는 자세히 알고 싶었다. 무포장이 어떤 의미인지, 왜 포장을 하지 않는지 물었고, ’ 제로웨이스트‘의 개념을 처음 알았다. 설명을 듣고 기꺼이 찬성했으며, 비닐 포장을 대신하기 위해 광목천을 사서 친구의 재봉틀로 보자기를 만들었다. 마켓 당일 사람들의 자연 소재 제품의 관심과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는 선의를 보았다.
의미 있는 일,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생생한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되었다. 실은 회사를 잃고, 사회에 설 자리를 잃었다고 스스로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회사를 다니며 내 존재가 가치 있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는데도 말이다. 돈을 버는 일, 자리를 갖는 일은 성인이 된 나에게 중요한 과제였으나 막상 이루고 보니 아무런 가치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허나 내가 일구어 낸 작은 일,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사람들과 나누는 일에는 명확한 가치가 있었다. 비로소 자기 가치감에 대해 처음으로 인지하고 나아가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