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책임
퇴사하고 네 달만에 온라인 사업을 시작했다. 남편에게 300만원의 사업자금을 받았다. 턱없이 적어보이는 금액이지만 큰 돈으로 가계에 무리가 가는 행동을 하는게 두려웠다. 돌아보니 이는 나를 새롭게 쓰기 위해 시작된 것이었으므로 작은 품으로 시작하는 게 마땅했다.
전에 없던 자유였다. 자유란 곧 자의로 할 일을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학교나 회사의 규칙없이 일어날 시간을 정하고, 아침 메뉴를 고민하고, 일하는 시간을 분배했다. 그것은 여느 타인의 간섭이나 조율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나와의 시간이다. 잠깐만, 살면서 휴일 외 나의 하루를 스스로 이끌어 본 적이 있던가? 하루를 쓰는 일부터 난관이었던 것이다. 부지런도 떨어보고 게으름도 피워보았다. 나와 꼭 맞는 리듬이 있다면 찾고 싶었다.
일을 하면서도 난관은 계속 되었다. 사업이라는 단어는 너무 거창해 보였고, 수완 같은건 타고나지도 않았음을 일찍 깨달았다. 어떤 물건을 어떻게 팔아야 마땅할까 골몰했다. 목표는 매출이 아닌, 스스로 일하는 방식를 터득하는 것이었다. 그 결심이 어찌나 단호했던지 웹디자이너 친구가 블로그와 온라인스토어 디자인을 도와주겠다고 나섰을 때도 모든 일은 스스로, 엉망진창이 되어도 직접 하겠다고 거절하기까지 했다.
1년 6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온라인으로 샵을 운영했다. 의욕에 비해 판매나 인기가 저조했던 것은 당연했으나, 사람들의 응원은 뜻밖이었다. 서투르게 고른 기물들을 역시 서툴게 판매하고 있었는데, 내 사진을 좋아해 주는 이도, 응원의 말을 건내는 이도, 구매를 해주는 이도 있었다. 그렇구나. 내가 만든 세계에 친히 발 들여 주는 사람이 있구나. 그 몇 분의 호의에 감사하여 몸둘바를 몰랐다.
불끈 용기가 생겼다. 작게나마 내 세상을 확장해보고 싶었다. 직접 발 딛고 설 수 있는 현실 속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허무함과 공허함만 쥐고 살아갈 수 없으므로 구체화되고 실질적인 공간, 만남, 일 같은 것이 절실해졌다. 그렇게 온라인에서 유형의 오프라인 상점의 형태로 불쑥 만들어졌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보증금을 내고 몇 달치 월세를 미리 마음속으로 빚지며 망할 각오를 든든히 하고 시작했다. 마침 좋아하던 연희동에 마음에 딱 맞는 한산한 귀퉁이 자리를 만났다. 공간을 꾸미기 위해 남편과 함께 페인트를 칠했다. 인테리어 프로그램을 유튜브로 배워 수납장을 직접 그렸고, 좋아하던 가구 제작자 몇 분에게 연락을 했다. 올리브 나무 한 그루를 사고, 노란색 로고 시트를 유리창에 붙였다. 무엇 하나 손에 쥔 것 없이도 이미 충만해져 있었다.
이 이야기는 퇴사한 후 자신을 찾아 사업을 멋지게 이뤄낸 성공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공은 커녕 이름도 그닥 알리지 못했으니까. 여전히 더러 막막하고 눈 앞이 깜깜해져 매 분마다 절망할 때도, 오늘 하루 사는 것도 버거워 내일도 그 다음도 끝없이 이어진 일이 무섭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비관적 결론이 거절하는 것은 낙관이지 희망이 아닐것이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