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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Kyoo Lee Oct 24. 2020

누나 양념과 빨간 도시락 by 김언니

정말 특별 할 것 없는 그냥 나물 반찬들이지요 ㅎㅎ

일주일 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시끄러운 남편(?)을 재우고, 늦은 밤 조용히 CCM을 틀어 놓고 일주일 먹을 밑반찬과 주중 식탁에 오를 요리재료를 손질하는 주말 저녁입니다. 여러 사정으로 종종 그 시간을 건너뛰기도 하고, 주말에 시간이 안 났을 경우 주중 저녁에 피곤한 가운데서도 가능하면 지키려 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라고 시킨 사람도 없고, 참고로 남편은 그 때 그 때 만드는 메인요리 한가지면 다른 요구가 전혀 없는 사람이라 밑반찬이나 여러 요리가 꼭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남편과 저 두 사람 모두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시간 절약 차원에서 밑반찬을 만들면 주중에 제가 덜 피로 하기도 하고, 급할 땐 후다닥 국 한그릇만 끓여 미리 준비된 반찬들과 내어 놓으면 되니 편리하기도 합니다. 저는 여전히 한식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제게는 필수불가결한 선택입니다. 가끔 피곤함을 무릅쓰고 2-4시간을 서서 음식을 준비하는 저를 보면서 남편은 안쓰러움과 왜 굳이 이 고생을 사서합뉘꽈? 하고 의아해 하기도 합니다.



재미난건, 누군가에게는 사서 고생으로 보이는 시간이 저에게는 고생을 덜어내는 시간이라는 점입니다.

이 시간은 제가 결혼 후 본격적으로 집밥을 하기 시작한 이래, 지난 11년 동안 제게 한 주 동안 차곡차곡 쌓였던 마음의 고생을 덜어내는 즐겁고도, 울적하고도, 속시원한 비밀의 방 같은 존재였습니다. 남편이 내 마음도 모르고 안부리던 똥고집을 부리는 날은, 망치로 돼지고기를 있는 힘껏 내리쳐 육질을 연하게 만든 맛난 돈까스를 만듭니다 (앗...분위기가 갑자기 호러가 되네요....흐흐;;). 제가 마땅히 하는 일인데도 진심을 다해 제 일에 대해 감사함을 표해주신 클라이언트의 전화를 받은 날엔, 남편이 7첩 반상을 받는 은혜를 누립니다욧~~ (눼, 7첩이라 함은 간장, 된장, 초장 뭐 이런 장이 7가지 올라가지요 에헴 ㅋ;;). 가끔 이방인으로 사는 이 땅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회의감에 방향을 살짝 잃은 날에는, 냉장고 깊이 금괴 마냥 모셔두었던 집된장 한숫가락 풀어넣어 배추국을 끓이며 엄마냄새를 맡기도 합니다. 갑작스레 어려움이 찾아와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 부족한 음식이 그 분의 마음을 잠시나마 따뜻하게 채워주기를 기도하고 도시락을 꽉꽉 채워 담는 날도 있습니다. 네, 클라이언트에게 천하에 몹쓸 소셜워커가 된 날은, 도마가 부셔져라 오이 5개 쯤 팍팍 썰고 고춧가루도 팍팍 넣은 오이무침 한통 가득 만들어 놓습니다. 여기서 남편이 눈치코치를 잠시 여행보내고 나는 오이가 싫은데...(남편은 야채를 잘 안 먹으려 합니다)를 시전하는 날에는, 집에서도 몹쓸 소셜워커의 면모를 한껏 보여주게 됩니다.





11년 전 시애틀에 도착하던 날을 기억합니다. 공항에서 저를 픽업 해 아파트에 데려다 주고는 남편은 수업 때문에 황급히 학교로 다시 갔습니다. 외식 자주 하지 말고 돈 아껴 쓰라는 아내 말 한 마디에,  요리도 못하면서 저 없는 지난 몇 개월을 남편이 맹물에 아무 재료 없이 된장만 풀어 끓인 된장물(?)과 세일하는 싸구려 소세지 한쪽으로 버텼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딴 말은 안 들으면서 그런 말을 꼭 너무 잘 들어서 속이 탑니다 허허;;)  남편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따뜻한 밥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집 옆에 마트에 용기 장착하고 걸어 갔습니다. 얼핏 들으면 빠다를 살짝 바른 괜춘한 발음으로 들리는 저의 개그스런 영어 실력을 저 스스로 무한 신뢰하면서 이것 저것 장 바구니에 담아 계산대에 갔지요. 그런데 갓 시애틀에 온 김언니가 가난해 보였는지 돈을 내려 하는데 받지도 않고(?), 제 뒤에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리는데도 도대체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저에게만! 하는 중년의 아주머니를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한참을 쳐다 보다... 에라 모르겠다 "Cancel!! Cancel!! " 한 마디를 외치고 도망치듯 밖으로 빈손으로 나왔지요 (한참 후에 알게 된 건, 마트 회원으로 가입 할지와 제 장바구니에 담겨있던 강한 진통제 성분이 든 감기약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신분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속사포 따발총으로 날리신 것이었습니다ㅠㅠ). 그렇게 집에 다시 와 너덜너덜 해진 마음으로 냉장고 속 남은 달걀 두 개를 부치고 시들어가는 샐러드 한봉지를 꺼내 냉장고 속 유일한 소스인 케첩을 끼얹고 나니 다리가 후들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쉽지 않은 이 곳에서의 삶이 몸으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시어머님이 결혼 선물로 사주셔서 이민가방 속에 이고지고 온 작은 압력밥솥을 꺼내 밥을 짓기 시작했는데, 결혼 직전까지 요리라고는 해 본적 없었던 날라리 학생이었던 저에게 압력밥솥은 원자폭탄만큼이나 놀랍고도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10분이면 밥이 된다던 그 밥솥은 15분이 지나도 추가 울리지 않았고 20분이 지나니 구수한 누룽지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추가 울리지 않는 압력밥솥도 있더군요!) 지붕 날아갈 걱정에 일단 불을 끄고 1시간이나 지나 밥솥을 여니 색깔도 까맣게 잘 우러난(?) 밥알들이 헤쳐모여 대형으로 밥솥 내부에 가득 붙어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눈 앞이 뿌옇게 되려는 순간...그 때 수증기로 흐릿한 부엌 창문 넘어로 남편이 크게 손을 흔들면서 아파트 입구에서 걸어 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반가움과 안도감에 남편에게 있는 힘껏 손을 흔들어주던 제 모습도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남편은 제가 한 탄 밥과 시큼한 케첩 샐러드와 매일 먹어 이제는 달걀을 낳을 것 같은데도 여전히 괜찮다는 달걀 프라이를 먹고는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라고 쓰고 싶었지만,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흠흠. 잊혀지지 않네요 그 정직한 표정이. 과하게 정직했던 그 표정 잊지 않으리라. 결혼 20주년에도 또 상기시켜주리라 흠흠;;; ).






딱히 다짐을 했다거나 이건 꼭 이렇게 할거야라고 규칙을 세운건아니었지만, 그 탄밥을 시작으로 지난 11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아무리 화가 나고 서운한 일이 있어도, 남편이 맛이 있다하건 없다하건 전혀 신경쓰지 않고(?) 제 스톼~일대로 남편에게 밥은 꼭 해주었습니다. 어찌보면, 요리는 이미 제 자신에게 묵상과도 같은 시간이기에 남편에 대한 사랑이 쪼매 모자란 날에도 여전히 저는 요리를 해 왔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친정엄마가 제가 시애틀에 도착해서 드린 첫 전화에 하셨던 당부의 말이 마음에 남아서이기도 했습니다.



"진규를 항상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봐줘 교인아. 살면서 서운한 날 있어도, 그래도 밥은 꼭 해주고"



어릴 때 엄마가 외출을 하거나 몇년에 한번 어쩌다 이삼일 일정으로 어디를 가게 되는 날이면, 엄마가 정말 빼먹으면 큰 일 날 것 처럼 신신당부 하던 일이있습니다. 냉장고 속 반찬을 주~욱 나열하고 가르쳐주면서, 아빠가 오시면 차려드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것 보다 더 중요한 부탁 혹은 명령에 가까웠던 것은 아빠가 식사 하실 때 반드시 앞에 같이 앉아서 식사 내내 아빠 옆에 있어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아빠가 혼자 식사 다 하실 수 있는데 왜 계속 옆에 있어드려요?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모든 대화가 잔소리로 들리는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식사하시는 아빠 앞에 앉아 있는게 어색하고 곤혼스럽기까지 했습니다. 화물 운전을 하셔서 일정따라 자정에도 집에 오시고 이른 새벽에 집에서 나가셔야 하는 아빠를 위해 그 시간에도 밥상을 차리고 눈을 비비며 옆에 앉아 있는 엄마를 바라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자식이 머리가 크면 부모의 행동을 평가하기 시작합니다. 저 역시 부모님의 크고 작은 단점을 알게 되고 이런건 정말 싫다...라는 점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부모님을 향한 잔소리도 늘어갑니다. 눼, 참말 못된 딸이죠. 그런 중에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싸우고 다신 안 볼것 같은 두 분 의 다툼이 있었던 그 수많은 나날 중에도, 몇십년간 한결같이 차려진 밥상과 그 곁에 밥 먹는 아빠를 물끄러미 봐주던 엄마의 모습은 제가 물려받은 귀한 선물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종일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며 보낸 고된 하루 끝에 집에 돌아온 아빠를.... 엄마는 따뜻한 국 한 그릇, 아빠 좋아하시는 김치 한 가지로 오롯이 받아주며 위로해주신 것 같았습니다. 물론 집에 파도가 치던 날엔 엄마가 속으로 어떤 욕을 하시며 포커페이스로 밥상을 차리셨는지 내심 궁금합니다 ㅋㅋ




남편이 앞선 글에서 허세와 과장을 약간 섞어서 포장을 하는 바람에 저는 순식간에 시애틀 김장금이 된 것 같습니다 ㅎㅎ현실은 맨날 먹는 단골 메뉴 열댓 가지를 돌려 요리하고, 설거지 거리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냄비와 프라이팬이 식탁에 오르고, 국에 말은 밥이 전부인 날이 허다한데 남편이 저를 칭찬해준다고 글을 쓰다보니 본의 아니게 한 달에 한번 있을법한 깨끗한 식탁 사진이 올려갔네요. (잘했쒀유~여보! ㅋㅋ). 겸손이 아니라 실상은 그냥 여러분댁의 밥상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맛도 모양도 너무나 평범한 집밥인데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요리를 즐겨하는 것이지, 요리를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의 건장한 체격(?)을 보시면 저 음식에 대한 쪼매난 애정은 추측하실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 하하.


사실 저는 제가 살아온 세상의 사고 방식이 부모님 세대와는 다르고 또 제가 갖는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 여자이니까 요리를 전담한다/ 여자가 좀 더 요리 센스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퇴근하고 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부엌으로 달려가는 저와, 결혼 생활에 있어 그것이 자신의 공동의무라고 인지조차 하지 않고 소파에 벌러덩 눕는 남편을 보면, 확실히 자라오며 경험한 불공평한 가사노동의 분배를 계속해서 제 스스로 무의식적 혹은 의식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눼, 여기서 또 억울하다며 당장 카톡을 날릴수 있는 남편의 반응을 고려하여ㅋ ....대문짝 만한 사진 한 장 나갑뉘닷~)


우리 동네 배 "아금니 꽉 깨물고 눈물콧물 참으며 파썰기 대회" 유일한 참가자이자 유일한 1등!, 이진순님



하지만 그러한 영향과는 별개로, 저는 요리가 제 마음을 표현하는 사랑의 언어이기 때문에 누구의 강요도 없이 제 스스로 이 요리라는 언어를 채택하고, 강화하고, 반복해서 사용한다고 믿습니다. 사람마다 사랑을 표현하는 언어가 다르고 그 어느 것이 더 혹은 덜 훌륭하다 좋다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아파 죽어도 일어나 밥을 먹고 아파야 하는 불사조같은 식욕을 가진 저에게 요리는 어쩌면 저 자신을 사랑하는 언어이기도 합니다 ㅎㅎ. 지난 11년간의 결혼 생활에서 뿐 아니라, 이 곳 물설고 낯선 땅에서 요리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이었습니다. 어렵게 친해진 여기 친구에게 짧은 영어로는 다 전달하지 못할 것 같은 제 진심을 전하고 싶을 때 정성껏 만든 한국 음식을 내밀었습니다. 클라이언트와 언짢은 일이 있었던 친한 한국인 동료에게 어떻게 위로를 전할까 하다가, 덩꼬에 불나고 이마에 식은땀 나고 그러다 정신줄도 살짝 놓으면서 나쁜 기억 상실을 가져오는 (하! 몹쓸 허세 개그가 또 출현했네요 여러분 ㅋㅋ) 매운 골뱅이국수 한 대접을 가져다 주며 응원하는 마음을 전할 때도 있습니다. 간식 좋아하는 누군가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는,  둘이 먹다가 둘 다 죽을수도 있는 달디 단 쬬코 팡팡 넣은 브라우니 대자! 한판을 구워 보내기도 합니다 ㅎㅎ. 그런가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아직 제가 가장 마음을 전하고 싶은 두 분께 멀리산다는 핑계로 부끄럽지만 제대로된 밥상 한번을 제대로 못 차려드렸습니다.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 온갖 귀한 식재료를 구해 차려 드려도 제 마음이 여전히 부족할 것 같만 같은 두 분께, 따듯한 식사 차려드리고 곁에 앉아 반찬도 놓아드리고 싶은데 먹고 사는 일에 아둥바둥하다 언제 이리 시간이 지났나 참으로 속상한 마음이 듭니다. 펜데믹이 어여 끝나면 장바구니 들고 달려가고 싶습니다.





동네 산책 길- 사실사철 푸르름이 있어 Evergreen State 이라고 불리는 이 곳에도 가을이 왔습니다



오늘 이른 아침부터 업무로 연락이 와서 처리하느라 남편 출근하는 뒷 모습도 못 봤습니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는데 보나마나 또 셔츠에 얄팍한 가디건 하나 걸치고 나갔을 것이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퇴근하며 코를 찔찔~흘리고는 " 누나, 오늘 오피스 너무 추웠어요 힝힝~" 하며 소파에 벌러덩 하겠지요. 참으로 예측 100% 가능한 아저씨입니다 ㅎㅎ. 우리집 큰 어린이, 감기 걸리지 말라고 쌀쌀한 가을 날씨에 소고기 뭇국을 끓여 볼까 하는 날입니다.


그렇게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어 식탁에 올리며

오늘도 김언니표 언어로 시애틀의 어느 가을 하루를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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