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풍경>

by 진경


비가 그친 도시엔

젖은 불빛이 남았다.

문 닫힌 꽃집 유리창 너머,

말라붙은 장미가 빛을 삼킨다.

이름 없는 것들은 자리를 지키고

바람이 묵연히 덮고 간다.


버스는 정류장을 지나쳤다.

나는 탈 생각이 없었고

버스도 기다리지 않았다.

서로의 방향을 모른 채, 우리는

다른 속도로 흘렀다.


신문 가판대의 활자들이

모르는 사이 뒤섞여 있다.

‘말’과 ‘침묵’ 사이에 끼인 쉼표 하나

누군가 그것을 읽고 있다


나는 어제의 단어를

오늘도 속삭이듯 되뇌고 있다.

입에 닿기도 전에 사라지는 말들,

비워낸 말들이 가장 오래 남는다.


가로등 하나가 깜빡인다.

심장박동처럼, 혹은

모르스 신호처럼.

SOS를 치고 있는 건 나일까, 도시일까.


길은 무겁고

삼켜진 말들이 심연처럼 굳어 있다.

아픈 것은 말이 아니라

말하려 했던 순간들이다.


편의점 형광등이 내 얼굴을 해부한다.

거울 속 누군가가 나를 흉내 내고 있다.

그의 눈동자에서

내가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향하고

나는 그들의 발자국 소리를 수집한다.

각자의 리듬, 각자의 무게.

발걸음이라는 암호를

해독하려 한다.


도시의 끝은

시작과 같은 곳에 있다.

원 위를 걷고 있다는 걸

언제쯤 깨달을까.

나는 길을 잃은 게 아니라

길이 나를 잃었다.


#眞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