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가 얼고, 술어가 얼고,
문장 전체가 빙판이 된다.
미끄러지며 말한다, 사랑한다고.
넘어지면서도 말한다, 사랑한다고.
동사가 얼면 행위가 멈춘다.
‘걷다’가 얼어붙어 ‘서다’가 되고
‘서다’마저 얼면 ‘쓰러지다’로 활용된다.
명사가 얼면 사물이 사라진다.
‘나무’가 ‘겨울나무’를 거쳐 ‘그림자’가 되고
‘그림자’마저 얼면 투명해진다.
형용사가 얼면 세계가 텅 빈다.
‘따뜻한’이 ‘차가운’으로 변하고
‘차가운’마저 얼면 감각 자체가 증발한다.
겨울의 문법책에는
침묵의 활용형만 가득하다.
침묵의 현재형: 입을 다물다
침묵의 과거형: 입을 다물었다
침묵의 미래형: 입을 다물 것이다
침묵의 진행형: 입을 다물고 있다.
페이지를 넘긴다,
하얀 것에서 하얀 것으로.
각 장마다 눈이 내린다, 활자 위로.
조사가 지워지고, 어미가 탈락하고,
문장부호들이 얼어 떨어진다.
마침표는 우박처럼,
쉼표는 싸라기눈처럼.
중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다.
‘문장의 뼈대는 주어와 서술어다’
지금 알았다, 겨울은
그 뼈대마저 부러뜨리는 계절이라는 것을.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얼어붙는
그런 계절.
입술을 떼는 순간
하얀 입김만 피어오른다.
하여 입을 다문다,
할 말이 많을수록 더 깊이.
말하고 싶은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그 얼어붙은 간격.
지하철 안, 승객들이
말없이 앉아 있다.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각자의 침묵을 활용한다.
그들 사이에 겨울이 있다.
보이지 않지만 단단하게 얼어붙은.
시인이 된다는 것은
겨울의 문법을 배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않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는 법.
빈칸을 남기는 법.
여백을 얼리는 법.
겨울은 가장 웅변적인 침묵.
하여 듣는다,
말하지 않는 모든 것들의 떨림을.
눈 내리는 소리,
고드름이 자라는 소리,
입김이 사라지는 소리,
문장이 얼어붙는 소리.
이 모든 소리 없는 소리들이
계절의 사전을 채운다.
그 사전을 읽는다, 밤새도록.
단 한 줄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
#眞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