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노트: 「정제된 격정」

by 진경


침묵의 입자 속에서, 나는 날을 세운다


나는 이율배반적인 침묵의 구조를 해부하고 싶었다. 세계는 점점 더 말이 많아지지만, 정작 그 안에 담긴 진실은 사라진다. 언어는 흐릿해지고, 말은 허공을 부유한다. 나는 그 틈에서, 식어가는 감정의 잔해들 사이에서 정제된 격정을 응시한다. 터질 듯한 내면의 열기는 사회적 온도에 맞춰 식혀지고, 타오름은 관리되고 봉합된다. 불타는 심장은 점점 냉정한 문법으로 포장된다. 그 안에서 침묵은 고요한 척하지만, 실은 폭력이다.


‘먼지가 하늘을 삼켰다’는 첫 문장은 세계의 반전을 선언한다. 하늘은 더 이상 위가 아니며, 이상은 더 이상 바깥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응시할 수 없는 내부로 침잠했고, 먼지는 시야를 흐리는 부유하는 시간의 잔해로 남는다. 말들은 방향을 잃고, 눈은 더 이상 세계를 담지 못한다. 여기서의 침묵은 단지 말 없음이 아니다. 그것은 말이 불가능해진 지점에서 일어나는, 응고된 감정이 맞닥뜨린 윤리의 침묵이다.



시의 중심에는 ‘정의의 죽음’을 놓았다. 그러나 그 죽음은 드라마틱하지 않다. 거리 한복판에서 조용히, 아무 의례도 없이 거행되고, 익명의 누군가가 묘비를 세운다. 그 위에 ‘진실 아닌 진실’이 놓인다. 사람들은 그것을 오래된 습관처럼 받아들인다. 기억은 지워지고, 슬픔은 연기된다. 현실은 부드럽게 기만된다. 내가 표현하려 했던 것은 어떤 직면의 불가능성, 윤리적 퇴화의 감각이다. 정의는 사라졌으나, 비극조차 허용되지 않는 ‘포스트-트루스’의 장례식.


길마저 스스로를 지우는 시대에, 세계는 방향을 상실한다. 우리는 그 위를 걷는다. 말 대신 이를 악물고, 돌을 씹듯 고통을 삼킨 채. 여기서 말하지 않음은 수동이 아니다. 그것은 저항이며 단련이고, 침묵 속에서 깃드는 정밀한 격정이다. 무언가를 외치기보다, 차라리 이를 악무는 쪽이 더 진실해 보이는 시대의 초상. 그것이 오늘의 ‘행진’이다.



종말의 하늘은 더 이상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별은 타지 않고, 구름은 흐르지 않는다. 모든 것이 정지된 시공 속에서 세계는 내부로 함몰된다. 변화조차 더는 오지 않는 세계. 모든 것이 멈춰 선 그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단 하나—내면의 결정이다.


그래서 나는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가늘게 날을 세운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절망 속에서 발화되는 결기이자, 침묵의 칼날로 살아남는 윤리다. 정제된 격정은 식은 열정이 아니다. 외침의 시대가 끝난 자리에서 시작되는 고요한 정치이며, 시인의 무기 없는 무장이다. 나는 폭발 대신 응축으로, 고함 대신 정적으로 존재의 윤리를 새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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